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참핀스키호텔.
수 백명의 삼성그룹 임원들이 모여 앉은 컨벤션홀은 누구 한 사람 숨도 크게 쉬지 못한 채 깊은 정적만 흐르고 있었다.
오랜 침묵끝에 터져나온 이건희 회장의 일성(一聲).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이 회장의 음성은 낮고 차분했지만, 모든 이들의 가슴을 `쿵`하고 뒤흔드는 커다란 울림이었다. 이어지는 이 회장의 외침은 강도를 더해갔다.
“불량품 생산은 범죄다. 세기말의 변화에 극복하지 못하면 삼성은 망한다….”
삼성그룹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선언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때를 기점으로 삼성은 외형 중심의 양적 경영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품질과 수익성을 따지는 질적 경영으로 모든 발상을 전환했다. 이후 이 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적당히 2류로서 만족하면서 제품만 양적으로 많이 팔아먹으면 된다는 안일한 사고를 철저히 버리고, 선택과 집중의 위기의식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수천대의 `불량` 핸드폰을 수북히 쌓아놓고 불태워버린 적도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현재 삼성은 100만 개의 제품에 3, 4개의 불량품만 나오는 세계 최고품질 기업으로 거듭났다.
경영목표를 `세계최고`로 설정한 삼성은 사람을 다시 뽑고 설비를 바꾸고 낙오자를 배제시키면서 내부로부터의 개조를 시도했다. 이때 이미 상시구조조정체제를 갖췄다.
국가 외환위기는 삼성이 이 같은 준비를 한창 가속화시킬 때 터졌다. 삼성에게도 존폐가 걸린 최악의 위기였지만 이 시기를 오히려 체질강화의 기회로 받아들였다.
가능성 없는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30% 이상의 인원을 감축하는 등 구조조정의 규모를 더욱 확대, 강화했다. 반면 반도체, 정보통신 등 주력사업에는 투자를 집중시켰다.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선택과 집중`은 바로 이 때 나온 말이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삼성의 패배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상상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위기는 입체적으로 다가오는데 삼성의 행태는 여전히 평면을 기고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세계최고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은 `신경영`이라는 위기의식에서 출발, 생존위기를 넘어서며 우뚝 섰고, 지금의 위기에도 강한 힘을 발휘하는 내성을 갖출 수 있는 체력을 비축했다.
<문성진기자 hnsj@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