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대통합은 사후에 존재해야 할 명제입니다. 대통합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물질적ㆍ정신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 선결돼야 하니까요. 사회대통합이라는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48%와 51.6%의 깊은 간극을 메우고 물길을 내는 것이 지도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고은(80ㆍ사진) 시인이 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바람의 사상'과 '두 세기의 달빛'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사회대통합의 의미와 과제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48%대51.6%라는 수치에 담겨 있는 간극은 너무나 크고 놀라운 일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사회대통합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통합이라는 말은 사후에나 쓸 수 있는 명제입니다. 그 전에 사회통합을 위한 물질적 기반과 정신적 기반을 만들어 서로 간의 간극을 메우고 물이 없으면 마중물이라도 줘서 물길을 내는 일들을 해야 합니다."
동북아 정세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시인은 "동북아 주요국에서 정권이 교체된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우리에게 중요하고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라며 "중국은 중화주의를 고착시키고 있고 일본의 우경화는 더욱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동북아 연대라는 것은 어쩌면 허울뿐인 백일몽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바람의 사상'은 지난 1973년 4월부터 1977년 4월까지 4년간의 기록을 담고 있는 일기 모음집이다. 일기의 처음을 펼쳐 들면 술 좋아하고 원고 쓰는 일에 쫓기고 그나마 받은 원고료를 술에 쏟아붓는, 그의 표현대로 '폐허'처럼 살았던 고은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전대미문의 독재 체제가 시작되고 문인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폭압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시인의 일기는 역사의 굽이굽이를 생생히 기록한다.
"1970년대는 문학과 역사가 동의어로 여겨지던 시대였습니다. 둘의 서술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갈라놓는 게 아니라 한 밥상에 올라 있는 반찬 같은 것으로 여겼지요. 숙련된 눈으로 파악하고 분석하는 요즘 같은 시대가 아니라 비논리적인 가슴으로 느꼈던 그때가 순결한 처녀 같은 시절이었다고 느껴집니다. 요즘 사람들이 1970년대 풍경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일기 같은 기록으로라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시인 겸 소설가 김형수가 함께한 대담집 '두 세기의 달빛'은 모국어를 잃은 한 식민지 소년이 해방을 맞고 전쟁의 폐허 한 귀퉁이에서 마침내 시의 첫걸음을 숨차게 내딛기까지 고은 시의 '원적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책을 통해 과거를 반추하면서 고은 시인은 과거의 의미에 대해 정리했다. "과거의 위대성이 있는데 과거를 현재로 살 때는 황량하고 비루하기도 하지만 막상 지나고 나면 이런저런 색을 칠하게 됩니다. 그래서 과거는 꼭 칠을 해야만 하는 내 마음속 풍경과도 같은 것이에요. 청진동 골목 시절에는 현실이 막막하고 술집에 놓인 술상조차 삐걱거렸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과거의 흔적을 찾아 그리워하고 있어요. 과거는 현재를 풍부하게 해주는 나의 어머니이고 나의 대륙이며 나의 이데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