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의 5대그룹 현황과 과제] (5) LG

99년을 맞는 LG그룹의 분위기는 여느 때와 다르다. LG그룹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이렇다할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었고 다른 그룹에 비해 보수적이면서도 탄탄한 기업이미지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재계를 뒤흔들었던 빅딜에서 LG그룹은 아무 득도 없이 주력업종중 하나인 반도체만 잃게 될 위기에 놓여있다.「사랑해요 LG」라는 그룹 광고문구를 「살려줘요 LG」로 바꿔야 한다는 자조적인 농담이 LG 직원들사이에서 오가는 것도 이같은 위기의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LG그룹의 99년은 현대전자와의 반도체 통합협상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달려있는 셈이다. LG그룹 역시 올해 구조조정의 구체적인 실행에 나서야 할 입장이다. 화학·에너지, 전자·통신, 서비스, 금융 등 4개 주력업종을 중심으로 그룹을 재편하고 부채비율을 연내 199.8%로 낮춰야 한다. LG는 이를 위해 현재 53개인 계열사를 올해 38개로, 2000년에 32개로 줄이고 연내 9개 계열사의 47개 사업을 분사시킬 계획이다. 또 지난해 17억8,000만달러의 외자를 유치한데 이어 올해 47억2,000만달러의 외자를 유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함께 올해 이사 총수의 25%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동시에 이사회에서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해 실질적인 이사회중심 경영을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총수 개인의 결정에 의존하지 않고 사외이사가 포함된 이사회에서 활발한 토론을 거쳐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해 경영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 LG그룹은 온통 반도체 빅딜문제에 매달려 있는 실정이다. 외자유치 등 구조조정 성과도 반도체를 잃어버릴 경우 무색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연초 LG그룹이 「LG의 화학산업과 전자산업이 21세기 우리 경제를 밝혀줄 두개의 희망입니다」라고 그룹 이미지광고를 낸 것도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산업이 LG의 중심축임을 재삼 강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까지 LG그룹은 반도체를 분리한 후의 상황을 생각치 않고 있다. 공식 입장으로는 반도체 빅딜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이지만 내심은 어떤 식으로든 반도체를 그룹의 주력업종으로 계속 이끌어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LG반도체의 외형이 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도 채 안되지만 반도체를 떼어낼 경우 그룹의 위상이 낮아지고 전체 직원들의 사기도 떨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반도체를 제외한 전자산업의 경우 규모는 크지만 수익성이 높지않고 향후 사업전망도 불투명하기 때문에 LG그룹으로서는 반도체에 집착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또 새 정부들어 무섭게 영토를 확대하고 있는 현대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리고 있다는 피해의식도 갖고 있다. 반도체사업이 현대에게는 간식(間食)이지만, LG에게는 주식(主食)인데 현대에게 반도체를 넘겨줄 수 있겠느냐는 하소연이다. 문제는 현재까지의 분위기가 LG에게 불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LG 입장에서는 최악의 경우까지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일각에서 반도체를 잃는 대신 정보통신 쪽을 강화한다는 식의 보상빅딜이 거론되는 것도 이같은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더욱이 LG가 이렇다할 반대급부없이 반도체를 잃게 될 경우 그룹의 위상문제뿐 아니라 그룹 내부의 역학관계 변화가능성조차 예상되고 있는 실정이다. 2000년대를 한해 앞둔 시점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 추진이라는 과제에 매달릴 여유가 없을 정도로 반도체문제에 시달리고 있는게 LG그룹의 현주소다. 「지금은 우기」라는게 LG그룹 관계자의 촌평이다. 우기이후 LG그룹이 5대그룹중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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