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트로가 서울지하철 2호선의 신호기 이상을 사고 발생 14시간 전에 감지하고서도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조금만 신경을 썼다면 사고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지하철 당국의 안전불감증에 대한 비난 수위가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지방경찰청 열차사고수사본부는 6일 상왕십리역 지하철추돌 사고와 관련한 중간수사 발표에서 "사고 당일인 지난 2일 오전1시30분께 서울메트로 신호팀 직원이 신호기계실에서 모니터상으로 신호 오류가 난 것을 확인했지만 통상적 오류로 생각해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서울메트로 신호시스템 관련자 1명과 시스템 설치·유지 민간 업체 관계자 2명을 조사한 결과 문제가 된 연동장치 데이터 수정은 지난달 29일 오전1시10분께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3일 발표를 통해 지난달 29일 오전3시10분 기관사들의 요구로 선로전환기 속도 조건을 바꾸기 위해 연동장치의 데이터를 수정하면서부터 신호에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했으며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이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신호 오류를 사전에 감지했다는 사실은 기존 진술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이번 사고의 정확한 원인과 책임소재를 가려내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오류 발생 시각이 두 시간이나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 "당시 시스템 데이터 변경을 한 서울메트로와 외주 업체 직원의 진술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번 사고에서 서울메트로 측은 신호기에 고장이 발생한 지 나흘 동안이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구간을 지나는 열차가 하루 550대에 이른다는 점에서 나흘간 2,200여대의 차량이 언제라도 사고에 직면할 수 있는 엄청난 위험을 안고 승객들을 실어나른 것이다.
경찰은 정확한 사고원인 조사를 위해 이날 오전11시55분께 서울 서초구 서울메트로 본사 기계실 관련 부서, 중구 서울메트로 동대문 별관, 2호선 을지로입구역을 압수수색했다. 금천구에 있는 신호 데이터를 입력하는 민간업체 한 곳도 이번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경찰은 앞서 뒤 열차 기관사 엄모(45)씨를 비롯해 당시 사고 열차 두 대에 타고 있던 승무원 4명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상왕십리역에 정차해 있던 앞 열차 기관사 박모(48)씨는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 열차 문이 정상적으로 닫히지 않아 세 번이나 스크린도어를 여닫는 바람에 출발이 1분30초가량 늦어졌음에도 이를 관제소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뒤 열차 기관사 엄씨는 신당역에서 상왕십리역으로 진행하던 중 100m가량의 곡선구간을 지나 갑자기 '정지' 신호가 표시된 것을 발견하고 비상 급제동을 했지만 추돌하고 말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또 사고 당일 서울메트로 종합관제센터에서 근무하던 관계자 4명도 소환 조사해 근무 매뉴얼 전반과 무선 교신 내용도 확인했다. 경찰은 "관제센터에서 앞 열차에 대해서만 회복 운행을 지시하는 것이 매뉴얼에 규정돼 있는지는 수사를 더 진행해봐야 한다"며 "아직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된 사람은 없으며 종합적으로 수사한 뒤 추후 결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