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점의 가격파괴 바람은 끝이 없는가?』할인점의 성패는 가격이 좌우한다. 저렴한 가격은 할인점의 경쟁력으로 백화점·슈퍼마켓 등 다른 유통업태와 차별화하는 무기다. 뭐니뭐니 해도 값이 싸야 소비자들이 매장을 찾는다는 말이다.
특히 지난 97년말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가면서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에게 싼 가격은 최대 소구력(訴求力)이었다. 지난해 백화점들이 전년대비 30%의 매출격감속에서 1개의 점포도 늘리지 못한 반면 할인점들은 소비자들의 흡인력을 바탕으로 전년대비 28% 신장, 20여개의 점포를 신설할만큼 경쟁적으로 다점포화를 추진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 93년 11월 E마트 서울 창동점이 개점되면서 국내에 처음 도입된 할인점들은 그동안 최저가격 추구를 지상과제로 삼아왔다. 한푼이라도 싸게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공급,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던 것이다.
국내에서 가격파괴는 초기단계에 유통업체가 납품제조업체로부터의 매입원가와 광고판촉비·포장비 등을 줄여 소비자 판매가격을 낮췄다. 이는 국내 유통가격 질서를 근본부터 뒤흔든 것으로 다른 유통업태를 긴장하게 했다.
가격파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할인점들은 유통업체 자가상표(PB)를 개발, 제조업체들과 공동으로 상품을 생산함으로써 정상상품보다 가격을 10~30% 인하했다. E마트는 PB상품비중을 현재 13%에서 오는 2003년 45%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까르푸 등 다른 할인점들이 PB상품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PB상품 개발을 통한 가격파괴의 잠재능력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할인점은 싸구려만 판다」, 「싼게 비지떡」이라는 인식이 소비자들 사이에 확산돼 서비스나 품질을 무시한 단편적인 가격할인은 한계를 맞게 됐다.
이에 따라 할인점들은 최근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내부 정보시스템 구축과 물류체계 개선 등을 통해 보충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현재 협력업체와 수·발주 및 재고관리를 자동으로 할 수 있는 전자문서교환(EDI) 시스템과 통합물류시스템 구축을 통한 간접비용 절감이 유통업계의 현안인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지금까지의 가격경쟁은 할인점업체별 점포수가 최대 15개로 유통업체가 구매력을 바탕으로 제조업체보다 우위에 설 수 없어 가격파괴형태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동안 할인점들은 가격경쟁을 펼치면서 가격파괴의 대상을 소수의 비인기 미끼(로스리더) 상품으로 제한했다. 설령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대표상품이라 하더라도 특정기간에 가격인하를 해왔다.
그러나 할인점업체별 점포수가 30개 이상이 되는 오는 2002년부터는 실질적인 제판(製販)동맹과 원부자재 아웃소싱, 생산공정의 합리화를 통한 가격창조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가격창조의 시대엔 유통업체들이 가격결정권을 갖기 때문에 모든 상품에 대한 상시적인 가격할인이 가능하다. 결국 토종할인점들의 최근 가격공세는 유통업계의 가격파괴시대에서 가격창조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분석된다. /구동본 기자 DBKO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