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경제·사회현상들을 살펴보면 소수의 행동이 전체 집단의 행동을 결정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예컨대 화재 발생현장에서 처음에는 불구경을 하거나 발만 동동 구르다가 불현듯 몇 사람이 불끄기에 앞장서면 너도나도 우르르 달려들어 진화에 성공하는 경우를 보았다.이렇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부화뢰동하여 일어나는 각종 투기행위, 매점매석, 과소비, 지나친 집단행동 등이 끼치는 사회적 해악이 바로 그런 것이다.
최근 경제이론에서도 이른바 임계집단(critical mass)의 개념을 이용하여 이러한 집단행동을 분석해 왔는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고, 마침 수일 전 그 예를 보았기에 이를 원용한다.
도심 횡단보도에서 어림잡아 30여명의 보행자들이 빨간 신호등이 파란 신호등으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 보행자 한 명이 자동차 통행이 뜸한 틈을 타서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너가기 시작했다. 이때 다른 한 사람이 따라 건너기 시작하니까 기다리던 나머지 사람들은 신호등을 살펴보기보다는 같이 기다리던 다른 보행자들의 반응을 살피기에 바빴다. 드디어 세번째 사람이 건너기 시작하자 나머지 사람들 모두가 신호등을 무시한 채 우르르 몰려갔다. 전체인원의 10%에 해당하는 처음 세명, 즉 임계집단이 보행자 그룹 30명의 행위를 결정한 셈이다.
여기서 임계집단 세명의 행위도 문제지만 뒤따른 다수의 행동 또한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당장의 편익에 얽매여 뒤따라 건너지 않았을 때 자신이 입을 상대적 손해만을 생각하여 공중질서를 무너뜨린 것이 더 큰 문제다. 신호등이라는 서로의 약속, 즉 규칙보다는 서로가 눈치 살피기에 급급하고 약삭 빠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그만큼 건강하지 못한 사회가 아닌가 생각한다.
가치와 도덕기준이 사회적 약속에 부합하는지 또는 자신에게 적합한지 여부를 판단하기에 앞서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모방심리 속에서 개성을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창조는 기대하기 힘든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에게 남의 흉내는 그만내고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배운 대로 실천하는 지행합일의 모습이 아쉬울 때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