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전산시스템 교체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 경영진 간의 갈등을 보면서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등 지주 경영진은 은행 이사회 의결을 거친 '절차적 정당성'에 기반한 의사결정임을 강조하고 있고 이건호 국민은행장, 정병기 상임 감사위원 등 은행 경영진은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거론하며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다.
양자 간 이견조율 실패로 결국 공은 금융당국으로 넘어왔다. 정 감사가 이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을 문제 삼아 당국에 이를 알린 것이다. 급기야 법정소송 가능성마저 나온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과연 KB 경영진에는 조직이 안중에 있는지 묻고 싶다. 갈등의 직접적 당사자인 사외이사와 정 감사를 비롯해 은행 수장인 이 행장, 그룹을 책임지는 임 회장 모두에게 말이다. 이견을 조율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기보다는 배수의 진부터 쳐놓고 상처뿐인 승리를 갈구하는 이유가 궁금하기까지 하다.
이번 사태로 KB 구성원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지난해부터 터졌던 각종 사건, 사고를 추스르기도 모자랄 판에 또 경영진의 갈등마저 돌출된 탓이다.
KB 브랜드 추락 가속화는 불가피하다. 특히 이번 사태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당국 점검결과 등에 따라 지주·은행 중 한쪽 경영진의 타격이 불가피하고 연쇄적으로 KB 구성원 간 질시와 반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안 그래도 KB는 국민·주택은행 출신 간 보이지 않은 거리감이 조직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사태도 경영진 간에 신뢰가 없기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지주 경영진들은 정 감사의 문제제기를 돈키호테식 캐릭터에서 나온 돌출행동으로 폄하했고 은행 경영진도 당국에 알리기 전에 얼마나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위에서 1도의 틈이 벌어지면 밑에서는 도저히 메우기 어려운 균열이 갈 수밖에 없다. 조직에 모범을 보여야 할 경영진으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더구나 이번 갈등의 핵심 사안은 경영판단과 관련된 것이다.
기존 IBM 기반 전산시스템을 유지할지, 아니면 유닉스 체제로 바꿀지가 이슈였다. 남에게 따져달라고 문의할 성질이 아니다. 내부 고발류의 의로운 행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 하자가 있다는 이의가 제기됐다면 경영진 간에 머리를 맞대고 점검하는 게 맞다.
결국 이번 사태는 왜 KB가 문제인지를 드러냈다고 본다.
현재의 KB는 위아래 할 것 없이 소통이 막혀 있다. 관치의 피해를 많이 본 KB가 관에서 해결책을 구하는 아이러니를 보자니 안쓰러울 뿐이다.
/이상훈 금융부 차장 sh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