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진신고 과거분식 처리 유연하게

2003년 결산에서 719억원을 과대 계상했다는 대한항공의 분식회계 ‘고해성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처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고해성사는 증권집단소송 대상 기업 중 처음으로 금융당국의 제재수위에 따라 다른 기업의 분식고백도 뒤를 이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현재 감리가 진행 중이란 이유로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자수한 만큼 처벌수위는 그렇게 높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증권집단소송법이 발효되면서 정부는 과거분식에 대해 내년 말까지 집단소송대상에서 제외시키는 2년간의 유예기간을 설정하고 과거 잘못을 고백하도록 유도해왔다. 자수해서 광명을 찾아 투명경영의 계기를 마련하라는 뜻이다. 대한항공의 과거분식 고백은 이러한 점에서 시의적절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다른 기업도 대한항공처럼 솔직히 고백하고 분식회계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길 기대한다. 분식회계에서 자유로운 기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우리 기업은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은행대출을 받기 위해서 등 갖가지 이유로 분식회계를 관행으로 여겨왔다. 이는 투명경영을 저해했을 뿐 아니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됐다. 투명회계가 국제경쟁력이 된 상황에서 더 이상 과거의 부담을 안고 가서는 안 된다. 민ㆍ형사 책임이 두려워 분식고백을 미루거나 기피하다가는 더 큰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현행 규정상 앞으로 2년간 기업이 과거 회계처리 기준 위반사항을 자진신고하면 문제 삼지 않거나 징계수위를 낮춰준다. 투명회계 정착을 위한 고육책이지만 고해성사를 한다고 무조건 면죄부를 주는 것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분식회계를 ‘실수’라고 얼버무리는 기업의 발표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분식회계의 내용과 고의성 여부를 따져 징계수위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증권집단소송법에선 2년간 유예기간을 설정해준 만큼 금융당국의 징계만이라도 사안에 따라 엄격히 다스리는 것이 오히려 투명회계 정착을 앞당길 수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