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변할 차례다

“국회의원님 귀하. 국정에 바쁘실줄 알지만 (7월 임시국회에 상정돼 있는) `한ㆍ칠레 FTA`비준 여부가 국가경제의 절박한 현안이 됨에 따라 부득이 호소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장문의 편지가 지난 11일 국회의원 전원에게 보내졌다. 발신자는 손길승 전국경제인연합회장,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재철 한국무역협회장, 김창성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영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 경제 5단체 수장들이 연명으로 보낸 이 호소문에는 해외시장 장벽이 날로 높아져 수출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한ㆍ칠레 FTA가 한국경제의 새로운 돌파구라는 점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었다. 같은 날 여의도 국회의사당. 최근 `굿모닝시티 비리`로 검찰의 소환요구 등 곤욕을 치르고 있는 정대철 민주당 대표는 의원총회 자리에서 “(굿모닝시티의) 윤창열씨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은 4억2,000만원”이라며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받은 것을 시인했다. 정 대표는 그러면서도 “신당창당 문제 등으로 검찰의 소환에 응할 수 없다”며 “대선 때 받은 정치자금은 총 200억원”이라고 밝혔다. 이 파장은 이후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서 “여당, 야당 모두 선거자금을 공개하자”고 요구, 정치권 전반의 문제로 확대됐다. 국회의원 모두에게 보낸 경제계 수장들의 `호소의 편지`는 이날 일고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 재계 수장들이 호소문을 보낸 것이나, 정치권이 정치자금과 관련해 술렁거리는 것은 같은 날 동시에 발생했을뿐 각각 별개의 사안이지만 한국이 고민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공통으로 깔려있다. 재계 수장들의 편지를 다시 살펴보자. “…세계적으로 행정부가 체결한 FTA에 대해 의회에서 비준을 거부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만약 한ㆍ칠레 FTA가 비준동의를 받지 못한다면 양국간 정치, 경제, 외교적인 협력관계에 큰 손상이 올뿐 아니라 한국은 더 이상 FTA를 추진하기 어려워 세계시장의 고아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여건에 비빌 언덕을 만들어 보자는 재계의 절박한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재계 수장들은 편지 말미에 “경제계 모두는 의원님들의 이해와 결단을 호소합니다”라고 끝맺었다. 이는 직접적으로는 `한ㆍ칠레 FTA라는 현안을 빨리 처리해달라`는 정중한 주문이었지만 한꺼풀만 벗겨내면 `정치는 더 이상 경제의 짐이 되지 말라`는 간접 경고이기도 하다. <김형기 산업부 차장 k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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