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점점 노랗고 붉어지며 가을의 깊숙한 속내를 보여준다. 유장하게 뻗은 완만한 구릉은 서서히 크고 작은 계곡으로 바뀌어 간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그렇게 미끄러지듯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을 가로질러 프라하를 향해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도착하자마자 찾은 카젤교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약간 싸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탁 트인 풍광과 함께 해방감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이다. 우리와는 달리 자동차가 전혀 다리 위를 다니지 못하게 만든 것도 인상적이다.
68년 자유화 운동(프라하의 봄)과 89년 무혈시민혁명인 벨벳혁명으로 잘 알려진 프라하는 활기에 찬 거리의 모습에서 자유와 민주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수년전 영화로 각색된 밀란 쿤델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주인공들이 거닐었음직한 강변과 거리도 이 근처 언저리에 있다.
`동유럽의 파리` 또는 `100탑의 도시`라 불리는 프라하는 동유럽의 다른 어느 도시들보다 잘 보존된 전통양식의 건축물과 조형물이 자랑거리다. 왕이 살던 궁전은 물론 성당과 교회, 외적을 막기 위한 높다란 망루의 첨탑이 모두 100여개나 된다고 한다.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카젤교에 서면 야경으로 유명한 프라하성과 동서쪽의 망루, 그리고 블타바(몰다우) 강변의 여러 건물들의 지붕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카젤교는 14C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돼 체코의 전성기를 열었던 카를 4세가 수도의 동서쪽을 연결하기 위해 세운 길이 515미터, 폭 10미터 남짓의 석조교이다. 이 곳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오래된 건축물들이 밀집한 구시가 광장과 자유화운동의 진원지가 되었던 바츨라프 광장이 펼쳐져 있다. 바츨라프는 헝가리에 소멸된 모라비아 왕국을 재건, 10C에 처음으로 통일국가를 건설한 체코 `건국의 아버지`이다.
구시가 광장은 틴 성모교회, 화약탑, 구시청사 등 14C 고딕양식에서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및 최근세의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들까지 들어 차 있어 가히 `건축물의 박물관`이라 불린다. 광장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15세기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조각상은 굽힐줄 모르는 그의 의지를 상징한다. 인근에 유대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던 게토와 여기서 작업하던 프란츠 카프카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서쪽으로는 프라하의 상징인 프라하성이 유유히 흐르는 블타바 강을 굽어보고 있다. 카젤교에서 약 500여미터의 언덕 길을 올라가면 닿을 수 있다. 지금도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이 성의 뾰족탑은 대표적인 고딕 양식의 건축물인 성 비투스성당이 그려내는 이미지이다. 여행객들은 프라하성에서 시작해 카젤교, 구시가 광장을 거쳐 바츨라프 광장의 끝인 국립중앙박물관까지 이르는 4~5km의 거리를 단지 걷는 것만으로 죽 둘러볼 수 있다. 하지만 주변의 유적들을 꼼꼼히 살펴 보려면 3~4일 가지고도 모자랄 정도로 짙은 역사의 향기를 가득 내뿜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곳 프라하이다.
거리 곳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는 프라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오늘날 과거의 건축물이 잘 보존돼 있는 것은 체제 순응적인 국민성이 가져다 준 일종의 부산물이란 지적이다. 체코는 17세기초 오스트리아의 지배아래 들어간 이래 400여년동안 단 한번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저항을 하지 않았다. 1620년 프라하 인근의 빌라호와 전투에서 의회와 신교 연합군이 황제군에게 대패한 이후 30여명의 토후가 구시가 광장에서 처형된 것이 전부다. 인근의 헝가리가 합스부르크가의 지배에 대항하여 전 국토가 초토화되고 수많은 인명이 살상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현지의 한 유학생은 `오스트리아의 지배에 대항하지 않고 순응을 택한 것이 결국 동유럽 최고의 문화 보고가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며 `그러나 독일과 소련의 지배에 들어간 이래 체코 국민들이 지속적으로 자유와 민주화를 지향해 온 것도 역사적 사실`이라며 일면적인 역사 인식을 경계했다.
[여행메모]
◇일반 개요=체코 인구는 약 1,000만명, 프라하는 120만명이다. 슬라브 계통의 체코인이 전체의 94%를 차지한다. 동서유럽을 연결하는 접점에 있으며 면적은 남한의 강원도를 뺀 크기이다. 동쪽의 모라비아 지방과 서쪽의 보헤미아 지방을 남북으로 흐르는 블타바 강이 나눈다. 이 강은 독일에 들러가면서 엘바강이 되어 북해로 흘러간다. 한국처럼 사계절이 있고 대륙풍의 온난한 기후지만 바람은 차다. 습기가 적어 생활에 지장이 없으나 겨울에는 산악지대에 꽤 많은 눈이 내린다.
◇화폐와 통신=화폐 단위는 코루나(Kc). 내년도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중이어서 유로(C)나 달러도 통용된다. 30Kc=1유로이며 원화와는 약 40배정도다. 호텔의 전화요금은 분당 2유로로 꽤 비싼 편이어서 동전이나 전화카드를 구입, 공중전화를 이용하거나 수신자부담(콜렉트 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좋다.
◇항공 및 교통=체코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루프트한자가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까지 취항하고 이후 국적기(체코항공) 등으로 연결한다. 프랑크푸르트까지 11시간반, 프라하까지 1시간 남짓 걸린다. 인접국에서는 버스나 철도도 이용할 수 있다. 프라하 시내는 지하철, 전철(트램), 버스, 택시등을 이용한다. 대중교통을 자유로이 갈아탈 수 있는 프리 티겟이 시간에 따라 12~42Kc이다. 택시는 미터기가 있지만 보통 20유로 이상으로 비싼 편이다.
◇여행 상품 안내=하나, 자유, 롯데, 국일 등 국내 유수의 여행사들이 프라하(체코)~비엔나(오스트리아)~부다페스트(헝가리) 등 동구권을 7~9일간 여행하는 상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가격이 190만원~255만원등 천차만별이어서 사전에 서비스 내용을 철저히 체크하는 게 좋다. 특히 일부 여행사는 현지의 숙박장소를 시내에서 떨어진 외곽에 잡아두거나 식사의 질을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영업을 하고 있어 관광객들과 분쟁이 잦은 것도 주의해야 한다.
<체코 프라하=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