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영웅전 제6보신도안의 고수 사제
30대로 보이는 한 손님이 기원에 찾아왔다. 한복에 흰 두건을 쓴 차림이었다. 기원의 직원이 정중하게 물었다.
『바둑을 두시겠습니까』
손님은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직원을 내려다보더니 큰기침과 함께 말했다.
『기원 주인을 보러 왔소.』
별실에 있던 김태현3단이 손님을 맞이해 앉혔다. 그러자 그 흰 두건의 손님이 비로소 자기 소개를 하는 것이었다.
『내 성은 강(康)이오. 계룡산 신도안에서 수도 생활로 20년을 보냈는데 틈틈이 바둑을 연구하여 마침내 바둑의 이치를 터득하게 되었소. 대전에 나온 김에 세속 사람들의 바둑 실력을 시험하고자 하오. 이곳에서 가장 잘두는 분과 한 판 두도록 주선해 주시오.』
『그럼 우선 저하고 한번 두어 보시지요. 대전에서는 저도 좀 두는 편입니다.』
바둑판 앞에 앉자 손님은 백돌을 쓱 끌어당겼다. 별수없이 김태현3단이 흑으로 먼저 두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여럿이 둘러서서 이 바둑을 구경했다.
여남은 수 두어 보니 흰 두건의 손님은 9급 정도 되어 보였다. 결과는 손님의 대패. 계속해서 치수고치기를 했더니 손님이 9점까지 내려갔다. 손님은 코를 싸쥐고 돌아갔다.
며칠 후에 흰수염의 노인 하나가 찾아왔다. 강씨의 스승 박도인이었다. 한판 바둑을 청하는 박도인에게 김3단은 단호히 말했다.
『강씨보다 두 점 상수시라면 제게 일곱 점을 놓으십시오.』
노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일곱 점을 놓고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연거푸 세 판을 대패한 노인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내가 헛세상을 살았구나.』
162수 이하줄임 백불계승(52…50의 오른쪽).
노승일·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0/08/0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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