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외자도입 “예고된 혼란”/태국 환투기 시발 비·말연까지 불길 확산/정부주도 성장드라이브 한계 추락기로에『아시아국가의 성장신화는 끝났다』고 한 미 MIT대 폴 크루그먼교수의 예언이 맞아 떨어지고 있는가.
태국의 외환위기로 촉발된 동남아 4개국(태국·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의 경제 및 금융시장 혼란이 확대되면서 그의 예언이 새삼 관심을 끌고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2년전 한 잡지에서 양적 성장에만 치중해온 아시아국가의 개발전략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논문을 발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 4개국은 하나같이 정부 주도의 성장드라이브정책을 채택, 최근 몇년간 막대한 외자를 끌어들이며 수출에 주력하는 대외의존적인 발전방식을 채택해왔다. 이번 사태는 무엇보다 동남아국가들이 외환투기꾼의 공세에 무릎을 꿇을 만큼 취약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을 새삼 확인해줬다.
태국의 경우 이미 지난 5월부터 외환시장 위기가 불거져나왔지만 금융당국의 잇따른 대책도 소용없이 결국 최악의 상황까지 내몰린 것이다. 태국의 환투기로 시작된 외환시장의 위기는 당초 예상대로 유사한 정치·경제구조를 갖고 있던 필리핀의 페소화, 말레이시아의 링기트화로 불길이 번지고 있다.
급기야 태국정부가 이달초 14년만에 환율제도를 전격적으로 변경한데 이어 필리핀·인도네시아의 금융당국도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적극적인 반격에 나서고 있지만 불안감은 좀체로 가시지 않고 있다.
이에따라 일부에서는 지난 95년초의 멕시코사태와 같은 혼란이 동남아국가에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감이 팽배해 있는 실정이다.
사실 지난해부터 동남아국가들의 수출실적이 뚜렷한 둔화세로 돌아선데다 경상수지 적자 급증, 무분별한 외자 도입 등을 감안할때 이같은 위기는 어느정도 예고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동남아 4개국이 모두 막대한 외채를 떠안고 있는 점이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최근의 평가절하조치에 대해 수출경쟁력 강화라는 효과보다는 외채상환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이 수출전망마저 밝지 않다. 총액은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수출단가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중고가품은 한국 등에 밀리고 저가품에선 중국과 인도에 잠식당하는 이른바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국가들은 멕시코처럼 IMF(국제통화기금)나 맏형노릇을 하려는 일본 등의 외부 지원을 절실히 기대하고 있다. 동남아국가들은 외부의 도움을 통해 일단 불을 끄는데 성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외부원조라는 쓴약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정부가 앞장서 경제난관을 해결할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로 불리며 고도성장을 구가해온 동남아 신흥공업국들이 과연 여기서 추락할 것인지, 아니면 또다시 도약의 나래를 펼 수 있을지 중대한 고비를 맞은 것이다.<정상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