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분쟁 이후 부품 공급선에서 '탈삼성' 전략을 추진해온 애플이 신제품인 아이폰6에 삼성의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기로 한 것은 실리를 택했기 때문이다. 삼성을 견제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특허분쟁을 벌이고 있지만 기술력을 갖춘 삼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납품단가를 제시하면서 결국 애플도 삼성과 손을 잡은 것이다. 삼성은 애플에 경쟁사 대비 30% 낮은 단가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애플과 손잡은 것은 삼성 입장에서도 긍정적이다. 증권가 추정치에 의하면 삼성전자의 애플 관련 매출은 지난 2011~2012년 10조원, 삼성디스플레이는 연간 1조5,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많다. 이번 계약 체결로 삼성은 전체적으로 '애플 리스크'를 극복함에 따라 실적에 대한 우려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 왜 삼성과 손잡았나=애플이 삼성의 디스플레이 제품을 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로 분석된다. 우선 애플 내부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둔화로 이익이 점점 감소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의 양강구도라는 지위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의 30% 싼 납품단가 제안은 애플로서도 무조건 거부하기에는 너무 좋은 조건이다. 탈삼성 전략 차원에서 기존 거래처인 LG에 삼성 측의 제안을 보여주며 같은 가격대로 납품을 요청했지만 LG 측이 힘들다고 거부했다. 결국 이익을 높여야 하는 애플로서도 삼성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애플이 아무리 삼성과의 관계가 껄끄러워도 30% 저렴한 납품단가는 이익을 높여야 하는 애플로서도 매력적인 제안일 수밖에 없어 삼성과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멀티 밴더 전략이다. 애플은 LG를 포함해 재팬디스플레이와 샤프 등 3개 회사로부터 디스플레이를 공급 받는다. 이번에 LG의 물량을 삼성이 전량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재팬디스플레이와 샤프에도 기존보다 싼 가격으로 납품하도록 요구할 명분을 얻게 된 셈이다. LG처럼 애플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면 거래를 바꿀 수 있다는 무언의 압력인 것이다. 애플은 한 부품을 여러 개 협력사에서 공급 받으며 값을 깎는 멀티 밴더 전략으로 유명하다.
◇삼성, 양산수율 높여 애플 잡다=삼성이 30% 저렴한 납품단가를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은 높은 양산수율 때문이다. 삼성은 갤럭시라는 완제품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품 공급을 통한 매출 발생도 중요하다. 자체적으로 부품을 조달하는 능력을 확대하는 측면도 있지만 부품 제조업체로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에 따라 최근 몇 년 사이 스마트폰 부품과 관련해 양산수율을 높이기 위한 투자비용을 대폭 확대했다. 이를 바탕으로 양산수율을 높여 납품단가를 인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삼성이 LG보다 20% 이상 양산수율이 높은데다 연초에 LG의 주요 하청업체가 부도가 나면서 LG의 양산수율이 더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업계 전문가는 "삼성이 적극적인 투자로 양산수율을 높여 납품단가를 낮춤으로써 등을 돌렸던 애플을 다시 돌아서게 한 셈"이라고 말했다. 삼성 관계자는 "애플도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납품단가를 저렴하게 공급하겠다는데 이를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애플도 30% 저렴한 납품단가로 상당한 이익실현을 기대할 수 있고 삼성도 부품을 납품하게 돼 서로 윈윈하는 계약"이라고 말했다.
◇애플의 '탈삼성' 전략 변화 오나=스마트폰 시장을 놓고 치열한 선두경쟁을 벌이는 애플로서는 삼성에 대한 앙금이 깊다. 몇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특허분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애플이 삼성전자로부터 아이폰의 두뇌인 AP를 공급 받고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아이패드에 이어 이번에는 아이폰용 풀HD 디스플레이를 납품 받는 것은 삼성전자의 기술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앞서 애플은 부품 거래선에서 삼성을 배제하며 삼성을 견제하는 동시에 멀티 밴더 전략으로 공급처를 다양화했다. 값싸게 부품을 공급 받아 이익을 실현했지만 결국 더 높은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삼성의 제안을 애플도 무조건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오히려 삼성의 제안을 거부하면 커다란 손실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제반여건을 감안해볼 때 애플의 탈삼성화 전략도 회사 이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용지물인 셈이다. 조성은 삼성증권 연구원은 "삼성디스플레이가 아이패드에 이어 아이폰용 디스플레이를 애플에 공급하게 됨으로써 애플의 탈삼성화 전략은 대외적 명분일 뿐 애플도 회사의 이익실현이라는 실리 앞에서는 언제든 삼성의 부품을 가져다 쓸 수밖에 없다는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