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수영선수 박태환의 금지약물 복용 파문은 의사와 박태환 모두 기본적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일어난 어이없는 의료사고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의사는 문제가 된 '네비도' 약물 겉 병에 적힌 '도핑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올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문구를 확인하지 않았고 박태환 역시 약물의 이름조차 모른 채 주사를 맞았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이두봉 부장검사)는 6일 박태환에게 세계반도핑기구(WADA) 금지약물인 테스토스테론 성분이 들어 있는 '네비도(Nebido)'를 주사한 혐의(업무상과실치상·의료법위반)로 서울 중구에 있는 T의원 원장 김모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김씨가 네비도 주사가 금지약물인 줄 모르는 등 고의성은 없었으나 환자에게 약물의 성분과 부작용을 확인해 설명해야 할 의무를 저버렸다고 봤다. 김씨는 특히 네비도의 사용설명서에 '반도핑기구가 정한 금지약물'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 약물의 겉 병에도 '도핑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표시가 있음에도 이런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2013년 12월과 지난해 7월 두 차례 박태환에게 네비도를 주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첫 투약 전인 2013년 11월 박태환의 매니저 손모씨가 "국제적인 선수이니 금지약물을 주사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의를 요구하고 박태환 본인도 "진짜 문제가 없는 거죠"라며 수차례 물어봤음에도 김씨는 괜찮다는 답으로 일관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도핑양성 판정을 받은 박태환이 항의하러 올 때까지도 '몸 안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을 보충하는 것은 괜찮다'는 생각을 고수하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돼서야 '문제가 있기는 있나 보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안이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네비도 주사를 투약한 사실을 진료기록부에 기재하지도 않았다.
박태환 측도 주의가 부족했던 건 마찬가지였다. 박태환은 병원에 수차례 주의를 당부했다고는 하나 정작 자신이 투약하는 주사의 이름조차 몰랐다. 만약 네비도라는 이름을 알았다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라도 문제가 있는 약물임을 알 수 있었다. 검찰에 따르면 박태환은 네비도 투약 전 적어도 남성호르몬을 보충한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이를 알고서도 주사를 맞은 것은 남성호르몬제를 인위적으로 보충하는 행위가 약물 이름이 무엇이든 금지된다는 스포츠계 상식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박태환이 남성호르몬제를 맞았던 사실은 전담팀뿐만 아니라 매니저 등도 모르고 있었을 정도로 선수관리도 허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세계적인 선수인데 관리가 굉장히 부실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밝혔다.
남은 관건은 오는 27일 국제수영연맹(FINA) 청문회에서의 징계 여부다. 이번 검찰 수사로 박태환은 고의적으로 금지약물을 투약했다는 의혹에서는 일단 벗어났지만 징계 자체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도핑방지규정은 '금지약물이 체내에 유입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선수 각 개인의 의무'라고 명시해 고의가 아니라도 도핑규정 위반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판에 넘겨진 김씨가 사법처리를 받게 될지도 불투명하다. 과실이든 고의든 상해죄가 인정되려면 피해자의 생리적 기능이 훼손됐음이 입증돼야 한다. 검찰은 이를 '환자가 원하지 않은 신체적 변화'로 넓게 해석해 김씨에게 과실치상 혐의를 적용했지만 법조계에서는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