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발표된 청와대 정·재계간담회 합의문은 재벌개혁의 완결편이자 재벌해체의 시발점으로 평가된다.그동안 문어발식 경영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해왔던 재벌들은 앞으로 몸집을 대폭 줄이고 소수의 핵심 주력업종 중심으로 경영을 해나가야 한다.
이로써 지난 30여년간 선단식 경영을 통해 이 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해온 5대 그룹은 앞으로 그 위상과 역할이 크게 바뀌게 됐다.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던 시대는 지났으며 이제는 주력업종에서의 「국제경쟁력」으로 승부를 걸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30여년간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재벌중심 경제체제의 틀이 확연하게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또 산업별로 2∼3개의 기업만이 참여하게 돼 자유롭게 진입하는 외국기업들과 함께 국내시장에서의 경쟁이 첨예하게 되는등 시장 환경도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이날 오전 청와대 직원들의 월례조회에서 김중권 비서실장은 『지난 수십년간 지속돼온 재벌중심의 한국경제가 실질적으로 새로운 경제로 출발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이번 합의문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번 합의는 특히 그동안 세계가 재벌개혁이 미흡하다고 지적한 데 대해 확실한 응답을 한 것이어서 대외신인도 회복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회의를 직접 주재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이제야 국민이, 그리고 세계가 평가하는 구조조정이 시행되게 됐다』고 평가하고, 『IMF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기틀을 확실히 마련, 2000년에 가면 명실상부하게 국제경쟁력과 신인도를 회복하고 모든 경제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전환점을 이번에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전문 5개항 및 실천사항 20개항의 「5대그룹 구조조정 추진 합의문」은 신화핵심분야 중심으로의 사업구조개편 신화상호채무보증의 해소 신화실효성있는 재무구조개선 신화경영의 투명성 제고 신화정부와 채권금융기관의 역할 등 5개 분야로 돼있다.
합의문 전문은 『5대그룹은 과거처럼 선단식경영과 계열사간 내부지원을 통한 외형성장을 추구하기 보다는 각 계열기업이 독립된 경영체제를 갖추면서 경쟁력의 상승효과를 추구해 나가는 투명한 협력구조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적시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5대그룹은 40∼70% 가량의 계열사를 정리하고 나머지를 소그룹 단위로 묶어 3∼5개의 주력업종을 영위하게 된다. 금융기관들도 대출의 출자전환을 통해 이들과 공동운명체가 된다.
그러나 합의문은 아직 「청사진」에 불과하다. 사실 그동안의 추진과정을 보면 과연 5대 재벌들이 정부의 의지나 국민과 세계의 기대대로 구조조정을 성실히 할 것인지 의문이 가는 부문이 적지 않다.
청와대가 정·재계 간담회를 7일 오후 열기로 잠정적으로 잡아놓고도 합의문 작성에 진통을 겪으면서 6일 밤까지 일정을 확정짓지 못한 것에서도 이같은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또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당기업 종업원의 강한 반발도 예상된다.
金대통령이 사전에 「뒷말이 없는 완벽한 합의」를 강조한 것이나, 그에 따라 기업의 합의 이행상황에 대한 은행의 공시 등 이행담보장치가 합의문 곳곳에 마련된 것, 공정거래위에 계좌추적권을 직접 부여토록 한 것 등도 이같은 우려와 시행착오 가능성을 미리 감안한 조치다.
정부는 이와 함꼐 채권은행과 개별그룹간 재무구조개선약정 및 공시제도, 금융감독위를 통한 은행감독권 등을 「무기」로 삼아 재벌들의 약속이행을 철저하게 감독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金대통령이 직접 매분기마다 「재계·정부·채권금융기관 간담회」를 주재키로 해 이번 합의가 차질없이 이행되도록 하기 위한 강력한 담보장치를 만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 재벌그룹이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합의문을 성실히 이행하느냐와 채권은행들과 호흡을 잘 맞추느냐에 달려 있다.
청와대는 이번 간담회와 합의문 작성으로 경제개혁의 밑그림이 일단 완성됐다고 보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개혁과 제2건국 운동을 차질없이 추진할 계획이다.
이같은 구상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정부가 재벌개혁에 따른 과도기적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경제회복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