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YS의 다섯손가락

엄지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을 펴고 가운데 손가락이 어느 것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본질적인 면에 충실한 사람은 중지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높고, 현실에 순응하는 사람은 검지라고 답할 것이다. 원칙도 없고 현실성도 결여됐으면서 독불장군인 사람은 엄지라고 할지도 모른다.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시절 이와 관련한 유머가 있었다. 연쇄 정상회담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인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옐친 러시아 대통령, 그리고 金대통령에게 앞의 질문을 했더니 클린턴은 중지, 옐친은 검지라고 각각 대답했다. 그러자 대답이 궁해진 金대통령은 엄지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면서 엄지라고 대답했다는 것. YS의 지기 싫어하는 성격과 막무가내식 대응을 빗댄 「썰렁한」 유머였다. 다섯 손가락은 각각의 고유기능을 가지고 있어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이것이 정치적 상징물로 쓰일 때면 사정이 달라진다. 엄지는 권력, 검지는 재력, 중지는 중산층, 약지는 서민, 새끼손가락은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 이하 계층을 의미한다. YS는 노태우(盧泰愚)·김대중(金大中)·김종필(金鍾泌)씨와 맞붙었던 13대 대통령 후보시절 자신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손가락 제스처를 취했다.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하고 중지를 포함한 나머지 세 손가락을 펴는 것. 그같은 표시는 엄지와 검지로 연상되는 권력층 및 재계의 힘을 누그러뜨리고 중지 이하 즉 중산층과 서민대중을 곧게 세우겠다는 정책의지와도 맞아 떨어져 좋은 이미지를 낳았다. 그러나 이후 「대통령병」이 깊어진 그는 「적」이었던 盧대통령 및 JP와 손을 잡고 집권당의 대표가 됐다. 그 때 그의 손은 더러워졌고 「영삼 제스처」의 의미도 퇴색하고 말았다. 14대 대선때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YS는 손가락 제스처를 바꿨다. 엄지를 곧추세우고 『나에게로 모여라』고 외쳤다. 집권당의 기호인 1번을 상징한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이미 깊게 침투한 권력욕이 그의 엄지를 더욱 곧추세웠을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는 다섯손가락을 활짝 펴고 국민들을 맞았다. 하지만 이미 굳어버린 그의 손은 국민들을 포용할 수 없었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두뇌의 용량이 부족하다는 근본적인 한계 때문에 결국 「실패한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그런 그가 이제 주먹을 불끈 쥐고 새삼스럽게 「독재타도」를 외치며 정치재개를 선언했다. 그가 주먹을 쥐면 쥘수록 다섯손가락(국민 각계각층)은 더욱 경직되고 답답해진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은 비록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모두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 특히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은 퇴임후 알츠하이머(치매·노망의 일종)에 걸렸다는 사실을 스스로 공개,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러나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은 계속 국민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오죽 답답하면 金 전대통령의 정치재개선언이 「YS식 치매공개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겠는가. JSKIM@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