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조4,742억원. 차기 정부가 공무원연금 적자보전에 써야 할 혈세다. 오는 2018~2023년 스텔스기 F-35A 40대 도입에 책정된 예산 8조3,000억원의 3.8배나 된다. 적자보전에 4조원만 덜 쓰면 당초 계획했던 60대를 살 수 있다.
대규모 빚잔치는 군인연금에서도 진행 중이다. 사립학교교직원·국민연금도 머잖아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다. 경제성장률·출산율이 떨어지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들을 부양할 핵심 생산인구(25~49세)마저 이미 2010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선 마당이다. 빈곤 수준과 상관없이 65세 이상 노인의 70%에 지급하겠다는 기초연금도 엄청난 우환거리다.
해결책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액을 줄이거나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를 높이는 게 대표적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공적연금 개혁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고 공무원·교원·일반 국민 등 가입자들의 집단이기주의에 휘둘리는 데 있다. 특히 정치권은 기초연금처럼 연금을 더 주겠다는 경쟁만 할 뿐이다. 연금에 관한 한 정책결정을 위임받은 공무원들과 조언자 그룹인 대학 교수들도 집단이기주의의 당사자일 뿐이다. 이들은 자신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제 3자 입장에서 메스를 댄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달린 공무원·사학연금 개혁이라는 과제와 맞닥뜨리면 180도 달라지곤 한다.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는 2008년 이해당사자와 대타협을 이룬다는 취지를 내세워 공무원노조 측이 구성원의 반을 차지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노사협상하듯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공무원과 '한 배'를 탄 교수들도 짝짜꿍을 했다. 그해 행안부가 주최한 공무원연금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사회를 보던 M교수는 "공무원연금이 잘 돼서 내가 퇴직한 후에 탈 사학연금도 덜 줄어들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내뱉었다. 솔직하지만 부적절한 망언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처리돼 2010년 시행된 개정 공무원연금법은 불평등과 무원칙이 난무했다. 연금이 깎이는 대상이 신규 공무원과 당시 재직기간 10년 미만자로 한정됐고 기존 공무원들의 연금수급 개시연령을 65세로 늦추려던 계획도 없던 일이 돼버렸다. M교수의 희망대로 사학연금법도 이를 답습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이 같은 불상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공무원·군인연금은 물론 사학·국민연금 개혁안을 만들 주체부터 과거와 달리하는 게 맞다. 공무원연금은 안행부,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식으로 개별부처에 맡겨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 개혁안의 밑그림도 새로 그려야 한다. 내년 10월부터 우리나라의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공제연금과 후생연금을 사실상 똑같은 제도로 바꾸는 일본이 우리가 벤치마킹할 대상이다. 보험요율과 받는 연금을 같게 해 사실상 하나의 통합 후생연금 제도로 운영하는 것이다. 물론 두 연금의 주머니는 따로 관리한다.
우리나라 공무원연금은 전문가들이 당초 제안했던 것보다 보험요율은 4%포인트 낮으면서 연금급여율은 6.6%포인트가량 더 많다고 한다. 국민연금도 9%인 보험요율을 13~14% 수준으로 올려야 기금이 거덜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정설이다.
우리도 공무원연금에서 퇴직금 관련 부분을 떼어내고 단계적으로 국민연금과 보험요율·연금급여율을 맞춰갈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청와대가 나서 공무원·국민연금 등을 한꺼번에 수술할 수 있는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공무원연금이든 국민연금이든 고령사회에 대처하려면 이 길밖에 없다. 그래야만 서로 비교하기도 쉽고 특혜 논란도 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