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지난 5영업일 동안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배럴당 125달러를 넘어서자 미국ㆍ유럽ㆍ일본 등 선진국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 따른 신용경색을 푸는 데 주력했던 선진국들은 이제 고유가를 잡지 않으면 경제가 심각해진다고 인식을 전환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이 국제 기름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내놓은 전략은 일단 ▦산유국에 증산을 요구하고 ▦달러 약세를 저지해 석유시장이 자본도피처가 되는 것을 막고 ▦헤지펀드 등의 상품 투기화를 억제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산유국에 대한 증산 요구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총대를 멜 전망이다. 부시 대통령은 13일부터 오는 18일까지 중동을 방문,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을 만나 원유 증산을 요구할 예정이다. 중동 산유국들은 그동안 미국 등 선진국의 증산 요구를 거부해 국제유가 상승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압둘라 국왕은 얼마 전 “새로 개발된 유전은 후손들을 위해 남겨두라”며 무분별한 증산을 염려한 바 있다. 지난 9일 차키브 켈릴 석유수출국기구(OPEC) 의장은 “국제시장에 석유가 충분히 공급되고 있다”며 증산 거부를 시사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중동 방문을 앞두고 OPEC 내에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OPEC의 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 OPEC이 오는 9월 이전에 하루 50만배럴 이상을 증산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리비아 국영석유회사의 쇼크리 가넴 대표는 블룸버그통신과의 회견에서 “석유시장 안정을 위해 (OPEC이) 증산 여부 등을 포함한 여러 옵션을 검토할 것”이라며 “9월 정례총회 이전에 특별총회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OPEC 회원국들이 미국과 유럽의 증산 요구에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오데인 아주모고비아 나이지리아 내무상은 “OPEC 정례총회를 앞당길 이유가 없다”며 증산을 위한 회의 조기소집 가능성을 일축했다. 선진국의 또 다른 방안은 달러 하락을 저지해 달러시장에서 석유시장으로의 자본 이탈을 막는다는 것. 이와 관련해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지난주 “달러 강세가 미국 경제에 이익”이라며 평상시와 다른 강한 달러론을 주장했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재무부 관료들이 달러 하락세를 저지하기 위한 국제 공조 구축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 총재도 “미국이 강한 달러를 원한다는 사실을 외환트레이더들이 알아야 한다”며 유로 강세를 더 이상 놓아두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4월 선진7개국(G7)이 달러 약세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후 공조 체제가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미국과 유럽의 정책 당국자들은 달러화 강세 전환이 유가 등 상품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일조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밀러타박의 토니 크레센지 투자전략가는 “상품가격 급등은 G7으로 하여금 시장 개입의 공조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석유 투기 견제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국제에너지기구(IEA) 협조로 헤지펀드의 석유 투기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한편 석유거래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선진8개국(G8) 회담을 주관하는 일본은 7월 홋카이도정상회담에서 석유 투기 근절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미국 민주당도 최근 백악관에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불법적인 석유 투기를 근절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상훈기자 sh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