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규(金德圭·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가을산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오색단풍이 물든 가을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일상의 틀을 벗어나 자연의 품속에 안기면 마음도 한껏 여유로워진다.
이 가을은 또 신선한 바람이 불어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다. 그러나 요즘은 여름과 겨울이 책의 성수기로 자리잡고 가을은 비수기로 바뀌어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에 책 판매량은 오히려 20%정도 떨어진다고 한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레저문화의 급속한 확산으로 책을 읽지 않는 풍조가 널리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책의 가치를 중시하고 책속에서 세상살이의 지혜를 터득하려 했던 우리 전통으로 보면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경기불황 때문에 독서인구가 더욱 줄어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괴물은 물질적 빈곤뿐 아니라 마음의 곳간마저 텅비게 하고 있다. 선진국에는 불황이 오면 비용이 많이 드는 집밖의 활동을 줄이고 오히려 책을 더 열심히 읽는다는데 우리의 풍토는 그렇지 못하다. 학교를 떠나면 책을 아예 외면하거나 시험준비 등으로 실용서 몇권을 마지못해 읽는 정도다.
개인이나 사회나 책을 멀리하고선 무한경쟁사회를 살아갈 수 없다. 21세기 지식집약형 산업시대에 진정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창조적 지식구조를 가진 사람들이다. 즉, 자신의 전공분야뿐 아니라 사회·문화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서만 21세기에 진정 필요한 자산인 창조성과 아이디어를 보장받을 수 있다.
「창조성」이란 한 개인의 전문지식과 더불어 문화·사회·인간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축적되어 나타나는 정신적 에너지를 의미한다. 요즘의 20세 초중반의 젊은 분들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런 능력이 30대 이전세대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한다. 그것은 책을 읽지 않는 사회적인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책속에 길이 있다고 했다. 달빛과 별빛이 어우러져 속삭이며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가을밤에 책을 읽으면 거기에 인생의 길이 보인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 이맘때. 독서삼매경에 빠져 스스로 마음의 곳간을 풍성하게 채우는 일은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