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칙 투자… 임금체불… 또 도진 뮤지컬 고질병

■ '두도시 이야기' 공연 15분전 돌연 취소 왜
스타 모시기 경쟁 가열… 제작비 거품 등 부작용
"비합리적 관행 개선을"



뮤지컬 제작사의 자금난과 이로 인한 갈등으로 관객 입장까지 마친 공연이 시작 직전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뮤지컬 시장의 비합리적인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투자금 돌려막기와 제작비 거품 등 고질병이 시장 전체에 만연한 상태에서 공연 취소나 제작사 도산은 특정 회사, 특정 작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예정됐던 '두 도시 이야기(이하 두 도시)'가 공연시간(오후 8시) 15분 전 취소됐다. 이날 두 도시를 제작하는 비오엠코리아의 최용석 대표는 무대에 올라 공연 취소 결정을 알린 뒤 "빠른 시간 안에 제대로 공연을 올리겠다"고 말했다. 사전 공지 없이 공연이 취소되면서 공연장을 찾았던 1,000여명의 관객들은 환불계좌를 남긴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하루 뒤인 30일에는 수요일 낮 공연과 저녁 공연이 모두 정상적으로 진행됐지만 제작사 측은 전날 사태의 구체적인 이유를 함구했다. 일각에선 비오엠코리아 측의 이전 작품들이 흥행에 실패한 데다 차기 작품 계획도 없다 보니 두 도시 투자자들이 제 때 돈을 지급하지 않았고, 그 결과 배우와 스태프의 임금이 밀린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두 도시 사태를 단순한 공연취소 해프닝 이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공급과잉과 제작비 거품, 변칙적인 투자 관행 등 한국 뮤지컬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결과라는 것. 인터파크에 따르면, 2008년 1,544편이던 연간 뮤지컬 작품수는 2011년을 기준으로 2,000편을 넘어섰고, 지난해엔 2,500편까지 증가했다. 관객이 확대되는 속도에 비해 공급이 많다 보니 제작사들이 스타 캐스팅에 매달려 제작비 거품을 만들었고, 투자금 유치도 비정상적인 구조로 변질 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공연 업계의 한 관계자는 "뮤지컬 시장에선 제작사들이 차기작의 투자비를 미리 땅겨 받아 이전 작품을 제작하는 이른바 '돌려막기'가 오래된 관행"이라며 "여기에 티켓 파워를 지닌 배우의 출연 여부가 투자의 중요 기준이 되다 보니 제작비 거품이 생기고 결국 작품을 올릴수록 빚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뮤지컬 투자 유치가 악덕 사채와 같이 빚을 늘려가는 구조로 변질 되면서 관객 유치에 흥행한 작품에도 돈이 돌지 않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 같은 문제와 세월호 여파가 겹치며 상반기 한 중견 뮤지컬 제작사가 2개 작품의 공연을 취소했고, 중소형 제작사들의 하반기 예정작들이 줄줄이 연기·취소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이번 두 도시 사태는 한국 뮤지컬 시장의 성장통이자 생태계 개선을 경고하는 일종의 알람"이라고 설명했다. 원 교수는 "배우와 제작자를 중심으로 제작비 거품을 제한하고 정부 차원에서도 티켓 가격 인하를 유도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나 지원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오히려 이번 일을 10여년 간 폭발 성장한 시장의 자정 계기로 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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