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가 지난주 시민의 자유와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미국과 맺은 '은행계좌정보 공유 잠정협약' 승인을 거부했다.
미국은 9ㆍ11테러 이후 '테러리스트 금융추적프로그램(TFTP)'를 가동, 지난 2007년부터 유럽연합(EU)과 이 협약의 협상을 벌여왔다. EU는 지난해 11월 법무장관회의에서 이 협약을 한시적(9개월) 조건으로 체결했지만 의회는 결국 이번에 협약을 최종 폐기시켰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막판 로비도 소용 없었다.
유럽의회는 협약이 사생활 보호 문제를 상당히 해결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세실리아 말스트룀 EU 내무담당 집행위원은 협약 승인의 표결에 앞서 "은행계좌정보는 익명성이 보장되고 특정인을 테러리스트로 단정할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만 공개될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의회의 뜻을 돌리지는 못했다.
TFTP의 명백한 성공도 유럽의회 결정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TFTP는 지금까지 미국ㆍ유럽 안보당국에 수많은 정보를 제공했고 관련 보고서도 1,500개 이상을 생산했다. EU 집행위원회는 2006년 영국 히드로 공항의 테러 기도사건도 TFTP 덕분에 막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주요 언론들은 유럽의회의 이번 결정을 "원칙을 지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는 사생활 보호와 국가 안전보장 사이의 균형에 대한 미국과 EU 간 (정책적) 차이점을 잘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 유럽의회는 자유ㆍ인권 등의 기본원리를 지키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은 지난해 리스본조약 체결로 얻은 공동체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유럽과의 공조를 통해 두 지역 간의 불화를 크게 줄였다는 점이 이번에 드러났다. 만약 10년 전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이는 조지 부시 대통령에 대한 국제적인 불신임으로까지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는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국제공조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다시 부각됐다.
EU와 미국이 협약을 다시 살릴 길이 있기는 하다. 미국이 EU 27개 회원국들과 개별적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까다로운 과정을 감수하는 것이다. 유럽의회가 이번 협약 부결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자만심은 집단안보체제의 훼손을 가져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