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탄데르 금융 여제 보틴, 공격경영 속도 낸다

취임 후 2개월 침묵 깨고 깜짝 인사
대표이사에 CFO 알바레스 임명… 여성·外人 등 사외이사 4명 선임
해외사업·투자은행 업무 영역 확대… 세대교체 통한 경영 개혁 신호탄


유럽 최대 은행인 스페인 방코산탄데르의 '여제' 아나 보틴(54·사진) 회장이 취임 2개월 만에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하며 해외사업 확대와 투자은행 업무영역 확대를 위한 본격적인 경영행보를 시작했다. 글로벌 톱20 은행 중 유일한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보틴 회장이 100년째 이어져온 보틴 가문의 성공신화를 이어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보틴 회장은 하비에르 마린 대표이사의 후임으로 이 회사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안토니오 알바레스를 임명했다. 여성과 외국인을 포함한 사외이사 4명도 새로 영입했다.

금융권에서는 취임 후 2개월간의 침묵을 깬 보틴 회장의 '깜짝' 인사를 세대교체 이후 본격화할 경영개혁의 신호탄으로 해석했다. 그의 아버지인 고(故) 에밀리오 보틴 전 회장은 신화적인 경영수완에도 불구하고 정실인사와 독단적이고 불투명한 경영 스타일로 비판을 받았다. 이번에 교체된 마린 대표이사는 대표적인 가신으로 금융전문가라기보다 회장의 개인비서에 가까웠다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보틴 회장이 아버지의 그림자였던 현 대표이사를 물러나게 하고 회사의 재무통이자 금융전문가로 명성을 쌓은 알바레스 CFO를 후임에 임명한 것은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과 강화되는 규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일로 풀이된다. 또 후임 CFO에는 자신의 최측근인 호세 가르시아 칸테라 전 바네스토 대표를 임명해 그룹 내 영향력 강화를 위한 고삐를 조였다.

이번 인사에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경영투명성 제고 의지도 반영됐다. 보틴 회장은 70대의 장수 사외이사를 여성과 외국인(멕시코) 출신으로 교체해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과 투명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알바로 쿠에르보 마드리드금융대학장은 "이번 인사는 국내 비중보다 해외사업 비중을 추가로 늘리고 투자은행 업무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고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를 통해 보틴 회장이 은행 성장전략에 집중하는 반면 자산건전성 강화 등 가팔라지고 있는 금융규제 대응을 후임 대표이사에게 맡기는 업무분담이 뚜렷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9월 심장마비로 돌연 사망한 에밀리오 보틴 전 회장은 20년간 국내외에서 130여건의 공격적 인수합병(M&A)을 진두지휘하며 스페인 지방은행을 자산규모 1조2,000억유로의 유럽 최대 은행으로 성장시켰다. 스페인을 평정한 전 회장은 '잘 아는 시장의 잘 아는 사업에 진출한다'는 원칙에 따라 문화가 비슷하거나 지리적으로 인접한 남미권과 유럽으로 발을 넓혀갔다. 산탄데르는 전통적으로 리테일 영업에 강하다는 장점을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용, 해외에서도 개인과 중소기업 여수신을 기반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그 덕분에 파생상품에 무리하게 투자했던 글로벌 은행들이 금융위기로 휘청거리는 와중에도 탄탄한 '개미' 여수신 고객들을 기반으로 산탄데르는 총자산 규모를 꾸준히 늘려갔다. 금융위기 당시에는 ABN암로 브라질법인과 영국 2위 모기지 업체를 인수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에는 뱅크오브상하이 지분 8%를 인수하며 중국까지 진출하는 등 글로벌 시장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금융권은 이 같은 성공신화를 일군 선대로부터 산탄데르 금융제국을 물려받은 보틴 회장의 경영행보 단초가 이번 인사로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번 인사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한 보틴 회장은 그동안 개혁 필요성이 제기됐던 회사의 배당정책에도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임 회장의 무리한 배당정책으로 회사의 자산건전성이 악화됐다고 지적하며 보틴이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배당 문제를 수술할 것으로 관측했다

방코산탄데르는 1857년에 설립된 스페인의 대표 은행으로 전 세계 1만4,000여개의 지점을 통해 1억여명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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