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무대서 함께 뛴다] (2) 예외없는 '무한경쟁'

협력업체도 경쟁력 없으면 거래끊어
韓·中기업 가리지 않고 납품조건등 철저 관리
대기업들 '3배수원칙' 고수… 생산성 향상 유도
협력업체는 공급선 다변화로 자생력 키우기 박차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난징까지 연결된 후닝고속도로를 1시간쯤 달리다 보면 ‘첨단산업의 메카’ 쑤저우(蘇州) 공업원구가 나타난다. 바로 ‘다국적기업의 천국’이라고 불릴 만큼 미국과 유럽의 내로라하는 글로벌 첨단기업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다. 일찍이 지난 94년 이곳에 진출해 현재 반도체와 LCD 공장을 가동중인 삼성전자 쑤저우 법인. 기자가 찾아간 시간은 오전 8시30분으로 다소 이른 시간인데도 큼지막한 정문 앞에 20여대의 화물차와 수십여명의 사람들이 한데 뒤엉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삼성전자 쑤저우법인의 모토는 바로 ‘창고 없는 공장’이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최대한 재고물량을 없애고 스피드경영으로 현지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 협력업체들은 생산에 필요한 부품들을 라인 투입 1시간 전까지 가지고 와서 생산라인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창고가 없으니 밖에서 대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엔가는 한꺼번에 100대가 넘는 차량이 한꺼번에 몰릴 때도 있더군요.”(삼성전자 오석규 팀장)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납품을 적기에 하는 것이야말로 경쟁력이고 그렇지 못하면 납품도 중단될 수 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는 국적이 한국이거나 중국이거나 예외없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원칙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난징(南京)에 진출한 LG전자 현지법인은 지난해 그 어느 때보다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업체간 치열한 경쟁이 ‘가격 전쟁’으로 번지면서 LCD TV와 모니터 가격이 자고 일어나면 뚝뚝 떨어졌다. 특히 LCD 제품 가격은 그야말로 ‘억’소리가 나올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내려갔다. 그렇다고 판매를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 어쩔 수 없이 같이 가격을 내렸다. 지난해 말 ‘연말 특판’이라고 한번 가격을 낮췄고 춘제(春節ㆍ설) 때 또 20% 넘게 할인행사를 했다. 이때 앉아서 손해본 것만 대당 2,000위안(약 25만원)에 달했다. ‘흑자’는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 됐다. 결국 지난해 협력업체들에게 올해 원가 절감 목표의 대폭 상향을 통보했다. 지난해 주요 품목의 가격이 50% 가까이 추락했고 올해도 그만큼의 가격인하가 예상되는 만큼 협력업체도 여기에 맞춰 따라와야 한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양정배 LG전자 총경리는 “가격이 떨어지는 데 정말 정신이 없다. 정말 팔기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하고 “이런 상황에서 느슨한 경영과 협력은 공멸을 의미한다”며 경쟁력 강화를 강조했다. 중국 진출업체들은 현지 업체와 전세계에서 몰려든 수천, 수만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현지 진출업체들에게 경쟁력 상실, 특히 가격경쟁력에서 밀리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매년 30% 가까운 살인적인 가격인하 속도를 대응해야 한다. 실제로 KOTRA가 현지 진출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33.5%가 ‘공급과잉에 다른 과당경쟁’을 가장 시장 공략의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특히 중국내 경쟁사에 비해 가격이나 품질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중국 업체에 뒤진다는 의견도 33%가 넘어 경쟁력 강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보여줬다. 하지만 경쟁력 강화는 협력업체 도움 없이 대기업 혼자 감당하기 힘들다. 현지 진출업체들로부터 협력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경쟁력에 대한 강조는 곧 협력업체에 대한 엄격한 관리로 연결된다. 대기업들은 한국 기업, 중국 기업 가리지 않고 동일한 납품 조건을 제시하고 이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우시(無錫)에 위치한 LS기계는 올해부터 협력업체 평가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A이상의 좋은 평가를 받으면 대금 지불조건을 30일 단축하는 등 혜택을 주지만 B이하의 성적을 받을 경우에는 신규개발 물량에 배정을 제외하고 C를 두 번 이상 받으면 거래 자체가 중단된다. ‘경쟁력이 없으면 납품도 없다’는 원칙을 올해부터 몸으로 느껴야 할 것이라는 게 박상길 총경리의 설명이다. 하지만 LS의 경우는 낮은 수준에 속한다. 얼마 전 삼성전자의 세탁기 모터 납품업체가 납품시간을 제때 맞추지 못한 적이 있었다. 늦은 시간은 불과 30분이 채 안됐지만 삼성은 가차없이 페널티를 부과했다. 해당 세탁기 생산라인에 투입된 인력이 30분 동안 받을 임금을 계산해 여기에 22배의 벌금을 부과한 것이다. 심수철 제조담당 상무는 “다른 업체에게 미친 피해까지 감안한다면 전혀 과한 것이 아니다”라며 “납품 시간 하나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면 그 업체와의 거래여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업체간 경쟁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된다. 이를 위해 삼성ㆍLGㆍLSㆍ하이닉스 등 대부분의 한국 대기업들이 ‘3배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부품 하나당 3곳의 납품업체를 지정하고 이중 가장 우수한 제품만을 생산라인에 투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협력업체들은 ‘공급선 다변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대기업에만 의존하는 시기는 끝났으며 이제는 독자적인 힘으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우쟝(烏江)의 LCD 코팅업체인 SKC 신소재 역시 3년 전까지 삼성과 LG 등에 목을 맸다. “한 두 기업에게 기업의 운명을 맡겼다가 납품이 중단되면 하루아침에 망한다”고 생각한 오주열 총경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대만, 일본의 LCD 업체를 ?아 다니기 시작했고 이제는 2,000만 달러의 매출액중 거의 절반을 삼성ㆍLG 이외의 업체로 다변화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전자에 ‘터브 어셈블리’ 등 드럼세탁기용 주요 부품을 공급하는 신흥정밀전자도 공급선 확장에 뛰어들어 최근 일본 캐논에 복사기 부품을, 오츠카와 오토바이 사이드 브레이크 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얻었다. 정회우 총경리는 “중소기업도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체 공급선을 뚫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경쟁업체에 비해 품질을 월등히 높이고 가격은 낮춰는 등 이전보다 5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송영규 국제부 기자(상하이·쑤저우·난징)·김성수 산업부 기자(므와바·질리나·부다페스트)·이현호 성장기업부 기자(뉴델리·첸나이) sskim@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