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마의 덫에서 벗어나라] <상> 공짜 복지

공약 지키려다 '점심' 못 줄 판… 세율 상향 고려해
SOC축소 등으로 재원 마련땐 경제 발목
복지 확대 할수록 늘어나는 지출도 부담
국민 이해 구하고 제대로 된 증세 혜택을


"증세 없는 복지는 립서비스에 불과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로 통하는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14일 국가미래연구원 강연에서 "국민적 복지욕구를 선제적으로 수용하는 게 정치 리더십"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세부담을 높이지 않고도 복지혜택을 늘리겠다는 박 대통령의 '고집'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정치권은 물론 최측근으로부터도 증세 필요성을 인정하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온 것이다.

정부가 월급쟁이 '넥타이 부대'의 강력한 반발에 놀라 하룻밤 사이 세법개정안을 재차 수정하자 도대체 복지를 어떤 방식으로 늘려갈지 여부를 공론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복지확대냐 아니냐를 떠나 무엇보다 '공짜 점심(복지)'의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복지를 늘리려면 증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유찬 홍익대 세무대학원 교수는 "결과적으로 세부담이 늘어나는 계층이 있는데도 증세가 아니라는 식의 대응이 문제"라면서 "세율 상향 조정을 통한 진짜 증세로 복지를 늘릴 시점"이라고 말했다.

◇자승자박 공짜 복지=정부가 공짜 복지 도그마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이 135조원의 재원을 확보해 복지공약을 달성하겠다는 정부의 목표는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공짜로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다 점심을 못 줄 처지에 몰렸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애초에 세부담을 늘리지 않고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것 자체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국정과제 재원 135조원 중 정부지출 절감으로 84조원을 줄이고 ▦비과세ㆍ감면 정비 18조원 ▦지하경제 양성화 27조원 ▦금융소득 과세 강화 3조원을 각각 확보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특히 지하경제 양성화의 경우 고소득 전문직ㆍ자영업자에 대한 탈세조사를 강화하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인데 지나치게 두루뭉술한 대안일 뿐 구체적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반면 세법개정안 재개정에 따른 세수부족은 당장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근로소득세액공제 한도를 기존 50만원에서 최대 66만원으로 상향해 중산층 세부담을 완화해주기로 했는데 이렇게 구멍 나는 세수가 2015년 기준 4,400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최초 세법개정안으로 2015년에 2조1,200억원의 세수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으나 약 20% 정도가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근로장려세제(EITC), 자녀장려세제(CTC) 등 일부 복지혜택이 이에 따라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더 큰 문제는 공약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정부가 내세운 해법 자체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정부지출 절감(84조원)의 경우 상당액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감액에 집중돼 있어 관련 산업이 황폐화할 우려가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더 큰 부작용을 예고하고 있다. 국세청이 세무조사 범위를 무차별적으로 확대하고 나서면서 기업과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어렵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성장률이 1%포인트 오르면 세수는 약 2조원 정도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되는데 현재는 성장률을 떨어뜨릴 수 있는 정책도 일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공짜 복지 도그마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붙드는 '자승자박' 효과를 내고 있다는 얘기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지부담=공짜 복지의 또 다른 함정은 복지의 규모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일단 한번 주어진 혜택은 되돌리기가 무척 어려운 것도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이다.

실제로 올해 복지예산은 97조4,000억원으로 전체 예산(342조원)의 28%를 넘어섰다. 또한 지난 20여년간 복지지출 증가율은 연평균 12%를 나타내 6%대인 평균 성장률을 두 배가량 웃돌았다. 이미 상당히 빠른 속도로 복지지출 확대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가 40년 뒤 북유럽 수준의 복지국가를 완성하고 싶다면 공공복지지출 비율을 매년 0.6%포인트씩 늘려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증세 없이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1980년대까지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통했던 영국의 경우 1910년대 맥주ㆍ담배ㆍ자동차ㆍ석유 등에 대한 과세를 늘리고 소득세 누진세 도입, 토지에 대한 자본이득세 도입 등 대대적 증세를 통해 일거에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살피는 복지제도를 완성한 바 있다. 국민의 지갑이 얇아지기 전에는 복지확대가 어렵다는 것은 이처럼 역사가 보여준다.

안종석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향후 복지수요가 늘어 세입 확충폭이 커진다면 장기적으로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수입을 증대시키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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