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은 세계최대 보험사 AIG의 공적자금 전용 논란으로 떠들썩하다. 수억달러의 보너스 파문도 문제지만 회사가 받은 1,800억달러의 구제금융 중 무려 1,000억달러 안팎을 BOA, 도이체방크 등 은행과의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청산 대금으로 지불했다는 점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국민의 혈세를 어떻게 회사 간 사적 계약에 쓰도록 내버려 뒀냐는 얘기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자. 만약 AIG가 공적자금을 못 받고 CDS계약을 이행하지 못해 부도가 났다면? 증권사인 리먼브러더스 하나가 무너지는 바람에 전세계 금융시장의 신뢰가 무너지며 아수라장이 됐다. 이럴진대 전세계 수백개의 네트워크와 수십만명의 직원, 나아가 수천만명의 고객을 갖고있는 AIG가 공중분해 되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은 시나리오다.
미국 정부가 지난해 AIG에 대한 구제금융을 제공했던 결정적 이유 중 하나도 수십조 달러 규모의 CDS시장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도 미국 사회가 마치 AIG의 새로운 편법이 드러난 것처럼 난리법석을 떠는 것은 왜일까.
사실 AIG의 CDS 논란은 ‘신자유주의’라는 명분아래 규제의 고삐가 풀릴대로 풀렸던 미국식 시장 자본주의의 자기모순을 그대로 드러낸 소극(笑劇)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신자유주의 가치가 무너진 것을 인정하면서도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뿌려야만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않은 미국민의 욕구가 드러난 것이다.
벤 버냉키 미 연준리 의장은 금융시장 파국을 막기위한 대마불사를 인정하면서도 AIG에 대한 구제금융에 정말 화가 난다고 공개석상에서 표명했다. 버냉키는 물론이고 폴 존슨 전 재무장관 등 고위 경제 관료들은 구제금융을 줄 수밖에 없게 만든 현재의 미국 금융시장 체계와 감독 시스템에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당초 위험분산 목적으로 시작된 CDS 등 파생상품은 그 복잡성과 시장 참가자의 탐욕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보이지 않는 위험으로 둔갑했다. 여기다 S&P 등 신용평가사는 이들 파생상품에 최고 투자 등급을 남발함으로써 버블을 부추겼다. 다음달 2일의 G20 정상회담에서 신용평가사 감독, 파생상품 규제강화 등 하나같이 미국이 그 동안 주도했던 시스템에 대한 개혁 방안이 논의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위기 국면에서 ‘AIG 경영진은 자살해야 한다’는 성난 분노의 목소리가 금융시장을 압도하면서 얼마나, 어떻게 구제금융이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 같아 씁쓰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