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원(왼쪽) 코리안리 사장이 임직원들과 함께 지난해 '백두대간 종주' 행사의 정점인 설악산 대청봉 정상에 오르며 환호하고 있다. /사진제공=코리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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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리는 일반 사람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보험사는 보험사인데 개인 가입자를 상대하지 않는다. 직원이 250여명에 불과하지만 아시아 1위 재보험사다. 당기순이익이 1,000억원을 훌쩍 넘는 금융권의 알짜다.
위기도 있었다. 외환위기 때인 지난 1998년에는 난파선과 다름없었다. 당시 공기업이었던 코리안리는 회사채 보증에 따른 당기손실이 2,800억원에 달해 파산 직전이었다. 이 회사를 맡아 놀라운 기업 성공 스토리를 쓴 주인공이 그해 7월 취임한 박종원 사장이다.
탁월한 실적을 배경으로 박 사장은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로는 처음으로 다섯 번째 연임 중이다. 서울 수송동 코리안리 본사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위기를 돌파하는 생존전략은 야성이다 = 박 사장이 강조하는 기업문화의 요체는 야성(野性)이다. 그는 신입사원 채용 때도 야성이 있는 인재를 뽑으라고 강조한다.
"제가 말하는 야성은 교양 없이 거친 것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야성을 갖춘 인재는 삼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첫째는 자연에서 생존하려면 머리를 잘 쓰고 상황판단이 빨라야 하듯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둘째는 어떤 극한 상황도 뚫고 나가 목표를 쟁취하겠다는 자신감과 긍정적 사고입니다. 셋째는 체력입니다. 21세기 도심 한복판에서 '야성'이라고 하니 고개를 갸우뚱할 것입니다.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력과 재능 못지않게 근성과 의지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야성이죠."
코리안리 CEO로 10여년간 박 사장은 야성을 강조하고 다녔다. 여대 특강을 갔을 때다. 그 자리에서도 야성을 주문했다. 반응은 두 가지였다. '뜬금없이 웬 야성'과 '저 사람이 야성을 얘기하나'였다.
재무관료로 25년, CEO로 10여년을 살아온 그가 야성을 논하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러나 그가 강조하는 야성은 살아남기 위한 똑똑한 전략이다.
"야성은 비즈니스 현실에서 조직을 강하게 만듭니다. 특히 변화가 빠르고 치열한 현대 기업에서는 꼭 필요한 덕목이죠. 나를 둘러싼 상황을 판단하고 자신만의 생존무기를 만들 것, 어떤 극한상황도 뚫고 나가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자신감과 긍정적 사고로 무장할 것, 어떤 어려움이 와도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체력을 갖출 것, 이것이 바로 야성의 핵심입니다."
◇조직의 핵심, 인재를 확보하라 = 코리안리는 해마다 9월 초 주요 대학에서 회사 설명회를 개최한다. 이를 시작으로 약 두 달여에 걸쳐 신입사원 선발에 공을 들인다. 까다롭고 번거로울 수 있는 신입사원 선발에 박 사장은 시쳇말로 '목숨'을 건다.
"회사의 미래가 달린 일인데 소홀히 할 수 있나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기업의 문화는 개개인이 모여 만들어갑니다. 그런 사람을 뽑는데 어떻게 대충대충 할 수가…."
코리안리 신입사원 선발의 차별성은 서류전형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흔한 인터넷접수는 물론 우편접수도 받지 않는다. 반드시 방문접수를 해야 한다. 입사지원서도 자필로 적어야 한다.
"인터넷이나 우편으로 서류를 접수하면 회사 입장에서도 비용과 노력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을 가려 뽑으려면 시작부터 지원자의 정성과 열의, 회사에 대한 자세들을 꼼꼼히 살펴봐야 하죠. 선발비용 줄이려다가 사람을 잘못 뽑으면 관리비용만 더 들고 회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입사했다가 적응하지 못하면 지원자로서도 낭비입니다."
박 사장의 면접방식은 독특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정신과 육체건강을 테스트하는 까다로운 절차가 포함돼 있어서다. 실내면접에 이어 등산과 축구 등을 통한 야외면접, 식사를 함께하며 실시되는 예절면접까지 진행된다.
"난사람은 많지만 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직원채용에 공을 들이고 까다롭게 구냐고 많이들 묻습니다. 이 과정을 고집하는 것은 모두 '야성'을 가진 직원을 뽑기 위한 우리만의 노하우이기 때문이죠. 야성 있는 인재가 조직을 강하게 만들고, 또 유지시킨다고 믿고 있습니다."
◇잘못을 시인하는 용기는 발전의 원동력= 코리안리에는 독특한 조직운영 시스템이 있다. '실패사례 발표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이 대회는 코리안리 조직운영의 정점을 찍는다. 박 사장은 눈에 보이는 성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 뒤에 있는 '사람과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조직이 강해지면 실적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믿었다. 실패사례 발표대회 역시 조직을 단단히 하고 사람을 키우기 위해 도입했다. "실패를 인정한다는 것. 큰 용기가 필요하죠. 누가 실수와 실패의 과오를 드러내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잘못을 시인하는 용기야말로 코리안리 발전의 원동력이죠."
박 사장은 직원들이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가장 솔직하게 실패사례를 공개하는 부서에 포상을 하고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나간 실패는 다가올 성공의 밑거름이지 질책이나 징계 대상은 아니죠. 대신 실패를 줄여나가기 위해 실패에서 배우는 '실패 재활용'을 최대한 실천해야 성공할 수 있죠."
성공경험보다 실패사례를 공유할 수 있을 때 조직이 더욱 건강해진다는 게 박 사장만의 '실패 성공학'이다. 이러한 '역발상 접근법'에 처음에는 의무적으로 실패사례를 두루뭉술하게 발표하던 직원들도 이제는 투명하고 진솔하게 실패를 공개한다. 또 하나의 새로운 기업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다.
●박종원 사장은
▦1944년 경기 화성 ▦1971년 연세대 법학과 졸업 ▦1988년 미국 밴더빌트대 경영학 석사 ▦1973년 행시 14회(재경) ▦1989~1994년 재무부 결산관리ㆍ외자관리ㆍ재정융자과장 ▦1997년 통계청 통계조사국장, 재경원 국세심판소 상임 심판관 ▦1997년 재경부 공보관 ▦1998년~ 코리안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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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동반자"
■박종원 사장의 언론관 "비판에 귀 기울여야 회사 발전에 도움"
"언론과의 만남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언론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5연임은 힘들었겠죠. 동반자적 언론관은 민간에 나온 후 더 발전됐습니다. 언론은 나를 비춰보는 소중한 거울이 됐습니다."
5연임에 성공한 '스타 최고경영자(CEO)' 박종원 사장은 언론과의 관계가 남다르다. 그러한 그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공보관 시절 기자들과 얼굴을 붉히며 사사건건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부 공보관을 맡았을 때는 모든 언론의 관심이 재정경제부로 집중돼 무척 힘들었죠. 언론에서는 연일 '외환위기의 주범'이라며 재경부를 공격했는데 집중포화를 맞는 부처의 공보관이었으니 그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일이 많은 것은 견딜 수 있지만 악의적이고 편파적인 보도를 대할 때면 정말 괴로웠습니다. 보통 공보관이라고 하면 언론에 늘 수세적이고 고분고분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저는 그렇지 못했죠."
당시 재경부 안에서는 그를 두고 '강하면 부러진다'거나 '언론에 밉보여서 좋을 게 없다'는 식의 우려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공무원이나 기자나 매한가지고 진심은 통한다고 믿었다.
"공보관을 하면서 사물을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었던 경험은 큰 복이죠. 똑같은 사안이라도 공무원이 보는 시각과 언론이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된 것이죠."
갈등과 반목도 따지고 보면 잘잘못이 아니라 시각차이에서 비롯되는데 이때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조정이 힘들다는 것을 일하면서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주변에 언론사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고민하는 CEO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언론은 '양날의 칼'과 같아 좋을 때 좋다가도 관계가 악화되면 곤욕을 치르기 일쑤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그런 CEO들에게 '사필귀정(事必歸正ㆍ무슨 일이든지 결국 바르게 처리된다)'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모든 인간관계는 하기 나름이고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면 그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죠. 세상 모든 일이 사필귀정이라 하지 않습니까. 회사 경영을 투명하게 하고 언론보도에 CEO가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면 언론은 나를 비춰보는 소중한 거울이 될 것입니다."
리더가 되려면 언론의 기능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그의 언론관은 다른 CEO와는 확연히 비교되는 부분이다. 언론이 전달하는 고객의 평가와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을 이해하고 동반관계로 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조직 내에서 자리가 높아질수록, 회사가 커질수록 비판의 목소리와 멀어지게 됩니다. 이때 언론은 큰 힘이 됩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이롭고 진심이 담긴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 도움이 된다'는 말은 언론 관계에도 딱 들어맞습니다." 박 사장의 조언은 젊은 기업인들 사이에 명쾌한 처방전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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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리 힘의 원천 '백두대간 종주'
직원들 매년 8~9월 등정 심신 단련
서울 수송동 코리안리 빌딩 1층 로비 한편에는 지난 7년간 코리안리 직원들이 지나온 백두대간 종주의 발자취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관에서는 백두대간을 종주한 흔적뿐만 아니라 과거 위기에 직면한 코리안리를 지금의 반석 위에 올려놓은 박종원 사장의 경영철학도 엿볼 수 있다.
코리안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존폐의 갈림길에 섰던 회사다. 그랬던 회사가 연 평균 13%대 성장을 거듭해 아시아 1위, 세계 10위 재보험사로 우뚝 섰다.
지난해 코리안리는 설악산 종주를 시작으로 두 번째 백두대간 종주에 나섰다. 지난 2009년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며 6년간 이어졌던 백두대간 종주 프로젝트를 마무리했지만 박 사장은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산을 찾았다. 두 번째 백두대간 종주의 시작은 설악산이었다. 끝낸 곳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그의 의지에서다.
박 사장은 등반대원 중 가장 연장자임에도 불구하고 백두대간 종주 내내 행렬의 맨 앞에서 임직원들을 이끌었다. 한 차례도 종주 행사에 빠진 적이 없고 다른 편한 길을 간 적도 없었다. 최고경영자(CEO)라고 특별대우는 애당초 있을 수가 없었다.
"설악산 공룡능선은 마니아들이나 아는 험한 곳입니다. 무턱대고 밀어붙이기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직원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가겠다는 겁니다. 전날부터 몸에 이상이 있던 여직원과 집행부 몇 사람을 빼고 전부 산으로 올랐죠."
14시간이 넘는 산행 끝에 보이기 시작한 중청대피소의 불빛. 온 몸이 계속되는 비로 젖었지만 낙오자 하나 없이 모두 산에 올랐고 직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야호'를 외쳤다.
희운각 대피소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30여분 올라 무너미 고개에 이르니 어느새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면서 설악산이 제 속살을 드러냈다. 공룡 등뼈 모양을 한 1,275봉과 나한봉 등의 바위 봉우리들이 출렁이듯 비경을 만들고 있었다.
서북능선을 지나 대청봉ㆍ공룡능선ㆍ마등령ㆍ진부령에 이르는 34㎞의 대장정은 체력과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난코스였다.
"등산은 인생과 같습니다. 힘든 고비도 있지만 그걸 넘기고 정상에 오르면 온 천하를 내주거든요.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또 다른 정상이 앞을 가로막지요. 가다 보면 고비가 오고, 고비를 넘겨 정상에 오르면 다시 내려와야 합니다. 인생도 힘들게 꽃을 피우지만 마지막에는 소프트 랜딩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인간만사가 모두 이와 같습니다."
이런 고생을 하면서도 매년 중독된 것처럼 8ㆍ9월만 되면 코리안리 직원들은 하나같이 백두대간 열병을 앓는다. 종주를 앞두고 몇 달 전부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서울 인근 산을 돌며 체력을 기르고 백두대간을 다녀오면 회사 안에 이야기 꽃이 만발한다. 산에서 받아온 정기는 다음해 다시 등정에 나설 때까지 코리안리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백두대간 종주가 직원들 스스로 참여하는 기업문화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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