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수사지휘권의 범위' 이렇게 생각한다


경찰의 모든 내사사건을 검찰에 보고하도록 한 국무총리실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검찰의 과잉 권한"이라는 입장을 전하고 "검찰이 경찰 내사를 사후 통제하는 방향으로 최종 조정되도록 정부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경찰과 검찰 측 입장을 박노섭ㆍ노명선 교수로부터 들어본다. ● 박노섭 한림대 법행정학부 교수
경찰측의 辯
상명하복은 입헌민주주의 배치
범죄행위 추궁 경찰 독립 업무로 지난 6월30일 개정된 형사소송법 제196조 제3항은 검사의 수사지휘권에 대한 구체적 범위ㆍ방법을 대통령령에 규정하도록 위임했다. 이에 따라 총리실은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는 내년 1월1일 이전에 대통령령이 동시에 발효될 수 있도록 지난 24일 입법안을 예고했다. 총 107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안은 경찰에서 요구했던 이의신청권, 석방지휘, 수사사무 점검ㆍ지도 폐지, 호송ㆍ인치 관련 부분 등을 수용했다. 또 검찰에서 수사지휘권을 보장ㆍ강화하기 위해 요구했던 정보보고 등을 포함한 내사사건 지휘, 대면지휘, 수사중단 송치명령, 대검찰청에 일반적 수사준칙ㆍ지침 제정권한 부여 등을 수용했다. 총리실 입법 예고안은 경찰의 수사개시ㆍ진행권을 형해화하고 검사의 지휘권이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형소법을 개정한 국회의 입법취지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법경찰을 수사주체로 인정한 개정 형사소송법 제196조 제2항과 검사-사법경찰의 명령ㆍ복종 관계(검찰청법 53조) 폐지 취지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명령ㆍ복종 관계에 기초한 사법경찰관리 집무규칙에다 새로운 의무조항을 덧붙인 '법무부 초안'을 논의 대상으로 해 검찰권 견제 차원에서 출발한 형사소송법ㆍ검찰청법 개정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결과다. 지금까지 검사와 사법경찰의 관계는 상관과 부하라는 특별권력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이 강했다. 이를 근거로 군대식 지휘관적 사고가 깊게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현대 입헌민주주의 국가 이념과 더 이상 부합하지 않는다.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사법경찰로 하여금 정당한 의사표현을 억제ㆍ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면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 따라서 수사지휘권의 해석ㆍ적용에서부터 민주주의 법치국가 이념에 맞게 시작해야 한다. 검찰과 경찰의 상명하복 관계는 헌법ㆍ국가공무원법과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사법경찰의 수사권을 보장하는 범위 안에서 효과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해석돼야 하고 이에 부합하는 내용을 대통령령에 담아야 한다. 첫째, 형사소송법 제196조의 수사지휘(재량행위)는 검사와 사법경찰이 특수신분 관계라 하더라도 헌법ㆍ법률에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사지휘권이라는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196조 제2항이 보장하는 경찰의 수사의무를 소멸시킬 수 없다. 형사소송법 제196조 제3항은 검사의 수사지휘에 관한 내용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을 뿐이다. 수사에 관한 사항까지 지휘권을 확장한다면 위임의 한계를 훨씬 넘어서 헌법이 보장하는 법률주의 원칙에 어긋난다. 둘째, 법률로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은 내사를 포함하는 수사 개념, 입건지휘, 수사사무의 위임, 송치명령 등에 관한 대통령령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난다. 셋째, 검사의 수사지휘 범위는 행정법상 직무명령의 한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넷째, 검사의 수사지휘 방법과 범위는 대통령령에 정할 수 있는 사안이라 하더라도 합법성 중심으로 제한돼야 한다. 공익의 대변자로서 검사는 경찰을 감시해 자의적인 경찰 수사로부터 무고한 피의자를 보호해야 한다. 반면, 검사의 기소편의와 기소독점은 검사가 직접 수사하는 경우 유죄 입증에 필요한 진술을 얻기 위해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기소재량을 악용한 비합법적 사법거래와 허위진술을 취득할 위험성이 크다. 검사가 직접수사에 중점을 두는 한 법의 파수꾼으로서, 진실의 발견자로서 경찰수사를 지휘ㆍ통제하고 공판 유지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곤란하다. 따라서 검사는 공익 대변자로서의 성격에 맞는 범위 안에서만 수사업무 및 경찰수사 관리 기능을 수행하고 그 이외 범죄 행위 추궁은 경찰의 독립된 업무로 함이 바람직하다. ● 노명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검찰측의 辯
경찰이 독자적 수사권 가지려면
외부통제 시스템 도입 서둘러야 우리 형사소송법은 경찰의 수사권에 관해 '수사관ㆍ경무관ㆍ총경ㆍ경감ㆍ경위는 사법경찰관으로서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해야 한다'(제196조 제1항)고 규정하고 있다. 개정 형사소송법은 경찰이 그동안 자율적으로 수사를 개시해온 현실을 반영해 제196조 제2항에 '사법경찰관은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식하는 때에는 수사를 개시해야 한다'는 명문 규정을 마련해 수사현실을 법으로 뒷받침하면서도 '모든'수사에 대해 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함으로써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유지했다. 다만 검찰청법 제53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법경찰관리의 검사에 대한 명령복종의무 규정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이유로 삭제하는 대신 형사소송법으로 자리를 옮겨 같은 조 제3항에 '사법경찰관리는 검사의 지휘가 있는 때에는 이에 따라야 한다'는 규정으로 대체했다. 이는 그동안 논란이 돼온 경찰의 자율적 수사 개시권을 명문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검찰과 경찰 간의 '수사권 조정'에 관한 것이 아니고 '수사현실'을 명문으로 법제화한 것에 불과하다. 기본적인 수사구조나 검사의 사법적 통제를 위한 지휘체계는 바뀌지 않았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 따라서 경찰이 자율적 수사 개시권을 독자적인 고유 권한으로 이해하고 입건 이전의 내사 단계에 대해서까지 검사의 지휘권이 미치지 않는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 범죄사실에 관한 확인이나 정보수집 등 탐색 단계에서는 경찰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 단계를 넘어 피의자를 소환하거나 압수ㆍ수색과 같은 강제처분 등으로 범죄혐의 있음을 외부적으로 표시하는 수사기관의 활동이 있을 때는 수사에 착수했다고 보는 게 다수설이다. 검사의 수사지휘가 내사라는 명칭으로 이뤄지는 경찰의 부당한 수사에 대해서도 수사 지휘라는 형식으로 이뤄져야 인권 보장을 위한 검사의 지휘권은 실효성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정 절차를 통한 증거수집만이 추후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점도 검사 수사지휘권의 주요 근거다. 경찰은 수사 개시에 대한 자율적 권한을 가지게 된 만큼 서둘러 내부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중장기적으로 구조적인 내부 개혁에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 경찰은 구조적으로 사법경찰ㆍ행정경찰이 구분돼 있지 않아 사법경찰관의 독립성ㆍ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지방 분권화가 안 돼 주민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검찰 또한 경찰의 수사 착수 이전 단계에서부터 구체적인 사건보고를 받으려 하거나 종전과 같이 유치장 감찰을 통해 비공식적인 사건 지휘를 하려는 생각은 자제해야 한다. 나아가 인권보장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가급적 직접적인 수사는 자제하고 경찰을 지휘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검사가 수사에 직접 관여할수록 경찰의 부당한 수사에 대한 견제기능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고 경찰의 불법 수사를 감싸고도는 '상급경찰'로 전락할 수 있다. 만약 경찰이 검찰의 수사지휘로부터 벗어나 독자적 수사권을 가지려 한다면 검사 이외의 외부 통제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일본 경찰은 수사권을 가지게 되면서 지방 분권화를 전제로 하고 자치 경찰제 도입, 행정ㆍ사법경찰 분리 등 경찰제도에 대한 전반적 변혁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웠다. 수사구조는 국민의 인권과 직결되는 것인 만큼 수사권 조정을 논의함에 있어 검찰의 경찰에 대한 지휘체계상 무엇이 문제인지, 새로운 제도변혁을 통해 얻게 되는 순기능은 무엇인지, 폐해는 없는지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위에서 문제점으로 지적한 경찰의 민주화ㆍ분권화, 사법ㆍ행정경찰 분리라는 구조적 개혁이 이뤄진 다음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