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리포트] 한국 구조조정 지연에 외국시각 갈수록 냉랭
시간은 구조조정의 적이다.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에 대한 월가의 시각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는 느낌이다.
최근 만난 월가의 코리아 데스크들은 `시간을 끌수록 구조조정 여건이 나빠질텐데'라며 한국의 구조조정 속도가 더딘데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한국계 미국인들인 이들은 핏줄때문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투자성과를 위해서도 한국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길 진심으로 바라는 모습이었다.
이들의 한결같은 걱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경제 여건이 나빠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외자 유치 없이 구조조정이 쉽지않은 현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구조 등을 감안할 때 세계 경제가 더 가라앉기 전에 구조조정을 서둘러 체질을 개선해야 하는데 미적거리고 있다는 걱정이다.
미국 경제가 연착륙(소프트랜딩)에 성공할 수 있다는 의견이 아직은 많은 편이지만 유가가 떨어지지 않을 경우 경착륙(하드랜딩)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적지않은 상황이다. 미국의 경기둔화세가 뚜렷하기 때문에 내년 상반기에는 경기진작을 위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올려야 할 것이라고 대부분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가 계속 높은 수준을 나타낼 경우 인플레 우려 때문에 FRB가 금리를 함부로 내리지 못할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경착륙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서서히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이미 침체국면에 놓여있는 유럽의 경우도 경제상황만 놓고 보면 금리를 내려야 할 입장이지만 유로화의 약세를 저지해야 하기 때문에 최근까지 금리를 올렸다.
세계 경제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이 경기사이클 조절을 위한 금리정책을 제대로 구사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수출이 당연히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고, 한국경제의 구조조정을 위한 외자유치도 쉽지않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처럼 한시가 아까운 시점에 한국에서는 집단이기주의, 행정가들의 몸보신주의, 뿌리깊은 연고주의 등이 여전히 구조조정의 속도를 더디게 만들고 있다는 걱정들이었다.
이들은 과거 대한생명의 예를 들면서 대우자동차의 매각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98년에 뉴욕의 메트라이프가 정부의 7,000억원 출자를 전제로 1조원을 출자, 대한생명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정부는 메트라이프가 대한생명을 헐값에 차지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1조5,000억원을 집어넣었지만 1조원에나 팔 수 있는지 의문인 상황이라는게 이들의 분석이다.
노조 등 종업원의 반발, 관료 및 채권단의 무소신, 전문가를 배제하고 아는 사람끼리 알아서 처리하는 연고주의 등이 어우러져 구조조정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월가의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뻔한 일을 매우 어렵게 풀어나가고 있는게 한국의 현실이라는 얘기였다.
이들이 한국의 사회경제구조를 잘 몰라 하는 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시간은 한국 구조조정의 적'이라는 충고는 가슴깊이 다가왔다.
/뉴욕=이세정 특파원 boblee@sed.co.kr입력시간 2000/10/2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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