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거법 허점 드러낸 대선 TV토론

대선 후보들의 첫 TV토론은 다자토론 방식의 문제점을 새삼 확인한 자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국민이 기대하던 박근혜ㆍ문재인 후보 간의 치열한 공방은 뒷전에 밀린 채 종북좌파 후보의 정치선동에 철저히 농락 당한 꼴이었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후보들의 국정철학과 정견을 비교 평가하고 국가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검증할 소중한 기회를 박탈 당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동문서답으로 일관하면서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출마했다"는 궤변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 후보가 박 후보에게 던진 질문들은 토론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국정감사장에서 피감기관을 윽박지르는 국회의원의 모습과 다름없었다.

이런 문제는 이 후보 개인의 자질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다자토론의 한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법정 TV토론 제도를 규정한 선거법의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현행 선거법은 국회의원 5석 이상이거나 직전 선거에서 3% 이상 득표한 정당 또는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 5% 이상 후보인 경우 중앙선거관리위윈회가 주관하는 법정 TV토론에 세 차례 참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다자구도로는 토론다운 토론을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렵다. 양자 간 질문과 대답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깊어질 때 후보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지지율 40%대 후보와 1%도 채 안 되는 후보에게 같은 장소에 같은 시간을 할애하는 토론방식이 공정한 룰인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다자토론에서는 특정 주자가 포위공격을 당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이번에 그랬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트위터에 "다음 토론에서 문 후보는 박 후보에 대한 공격을 아예 이 후보에게 맡기라"고 주문한 것도 균형감이 무너진 3자 토론의 폐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10일과 16일에 열리는 TV토론 역시 첫 토론의 재판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대선이 10여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법 개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급한 대로 운용의 묘를 발휘하도록 지혜를 짜내야 할 것이다. 선거법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함은 물론이다. 후보자에 대한 균등한 기회부여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후보를 검증할 최적의 기회를 유권자에게 제공하는 일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