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금융기관의 경영에 있어 위험관리는 하나의 새로운 업무가 아니고 금융시장의 변화에 적응하여 끊임없이 발전해온 경영관리방식의 최종적인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특정 금융기관이 사용하고 있는 구체적인 제도나 기법을 알고 이를 단편적으로 도입하기에 앞서 현재의 금융환경하에서 이들이 추구하고 있는 위험관리의 큰 방향을 큰 틀에서 이해하고 우리 금융기관의 환경과 역량에 맞는 위험관리체제 구축에 나서야 할 것이다.전사적 위험관리
선진금융기관에 있어 각종 재무위험에 대한 관리는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며 각 기관의 업무영역이나 금융시장의 상황에 따라 발전을 거듭해 왔다. 예를 들어 미국의 금리가 엄청난 등락을 보였던 80년대초에는 자금조달 및 운용의 만기 불일치(MATURITY GAP)가 컸던 일부 은행과 주택저축조합(S&L) 전체가 부실화하고 이에 따라 자산·부채의 만기관리를 강화하는 소위 ALM(자산부채 종합관리)기법이 위험관리의 주종을 이루었다. 국제금융시장의 확대와 멕시코와 같은 일부 개도국의 부도사태는 국가위험(COUNTRY RISK)의 중요성을 인식시켰고 각 나라와 국제기업들의 신용위험을 측정하는 S&P사나 무디스사와 같은 신용평가기관들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90년대에 들어서는 80년대부터 급성장을 계속해온 파생금융상품이 베어링사와 같은 유수의 금융기관을 파산에까지 이르게 함으로써 복잡한 형태의 시장위험관리가 위험관리의 새로운 영역으로 떠올랐다. 이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선진금융기관들은 특정한 형태의 위험요인(RISK FACTOR)이나 특정한 시장상황에만 국한되지 않고 금융기관의 장기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폭넓은 접근방법을 모색하고 이를 일반적으로 전사적 위험관리라고 칭하고 있다.
전사적 위험관리란 금융기관의 경영 및 영업활동에서 비롯되거나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요소를 인식하고(IDENTIFY), 이를 구체적으로 측정하며(MEASURE), 측정된 위험을 적정범위내로 제한하기 위한 각종 통제수단을 마련하는(CONTROL) 일체의 과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전사적 위험관리는 단순히 위험을 통제하는 새로운 방법이라기보다는 각종 영업활동에 금융기관이 보유한 자원을 투자하고 장기적인 수익을 추구함에 필요한 일련의 의사결정 과정을 위험이라는 새로운 차원에서 수행하는 것으로서 금융기관의 조직과 문화, 경영관리와 업무수행 프로세스에 큰 변혁을 가져오고 있다.
자본금관리 중심의 경영
금융기관의 자산은 채권자의 몫인 부채부분과 주주의 몫인 자본금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경우처럼 금융기관이 과다한 위험을 추구한 결과 부실화하면 가장 먼저 자본금이 감소하여 주주의 몫이 감소하게 되며 손실이 자본금을 초과하면 금융기관에 자금을 맡긴 예금주나 채권기관도 피해를 보게 된다. 주주의 경우에는 공격적인 경영에 따른 위험과 그 결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동시에 향유할 수 있지만 채권자의 경우에는 추가적인 이익에 대한 기대는 없이 위험을 부담하게 된다. 따라서 예금주나 채권기관은 유사시 금융기관의 지급능력을 가름하는 척도로 그 기관의 자본금 또는 자본비율을 고려하게 된다. 특히 80년대이후 국제적으로 수많은 금융기관의 파산을 경험하면서 금융기관의 신용상태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되었다. 금융기관들은 기본적으로 자금조달의 상당 부분을 예금이나 차입에 의존하므로 적절한 신용도를 유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적정수준의 자본금을 보유해야 하는 것이다. 80년대초 유럽연합이 제정한 적정자본에 대한 지침(CAD:CAPITAL ADEQUACY DIRECTIVE)이나 국제결제은행(BIS)이 도입한 국제금융기관의 자본관리기준(INT'L CONVERGENCE OF CAPITAL MEASUREMENT & CAPITAL STANDARD)은 이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후 전세계 금융기관의 경영이 자본금 관리관점에서 이뤄지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 선진금융기관의 경영관리에 있어 가장 큰 이슈는 현재의 자본금하에서 어떤 종류의 위험을 어느 규모로 안고 영업을 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요약될 수 있다.
감독기관의 역할 증대
금융기관이 각종 재무위험의 결과로 지급능력을 상실하고 파산하게 되면 주주와 채권자는 물론 거래관계에 있는 다른 금융기관도 연쇄도산의 위험에 빠지게 되며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그 피해가 결국 국가 전체에 돌아가게 된다. 이같은 상황이 미리 예상되면 경영이 어려워진 금융기관의 경영자는 국가 전체의 이익을 담보로 새로운 위험을 추구하는 소위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각국의 감독기관들은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의 폭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금융시장의 세계화와 증권화가 진행됨에 따라 금융기관이 갖는 위험의 연계성과 복잡성이 커지고 있어 각국의 감독기관과 국제기구들은 공조를 강화하는 한편 보다 정교한 감독수단의 개발이 지속되고 있다. 이같은 감독기관의 요구에 부응하는 소위 규제준수(REGULATORY COMPLIANCE)는 모든 금융기관의 최우선과제로 등장했으며 감독기관으로부터 받는 평가가 금융기관 경영성과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금융기술과 시스템의 발전
파생상품과 각종 합성 금융상품(HYBRID & STRUCTURED FINANCIAL PRODUCT)의 발전은 금융기관의 위험관리에 더 큰 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같은 상품들은 상당히 정교한 재무모형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환율, 금리, 주가와 같은 재무요인의 변동에 매우 민감한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이같은 상품의 거래를 대량으로 취급한 기관은 순식간에 도산에 이를 수 있는 위험에 빠지게 되는 일이 빈번하다. 이같은 위험을 측정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금융기술(FINANCIAL TECHNOLOGY)을 필요로 하며 그같은 기술은 시스템으로 구현되어 금융기관 전체의 위험수준에 대한 실시간 관측(REAL-TIME MONITORING)이 가능토록 하여야 한다. 특히 국제적인 금융기관의 경우에는 전세계의 영업망에서 수많은 종류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으므로 이를 집계하고 단순화하여 최고경영자에게 보고하고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는 통합적인 위험측정지표(INTEGRATED RISK MEASURE)를 개발하여 활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JP모건이나 뱅커스트러스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금융기관이 이용하고 있는 위험가치(VALUE AT RISK)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이같은 위험관리기법들은 그 정교성과 편리성에 불구하고 통계적 수치라는 한계를 갖고 있으며 이를 철저히 인식하고 있는 선진금융기관들은 그같은 통계모형상의 결함이나 재앙적인 금융시장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경험적 판단에 의한 미래상황의 분석(SIMULATION)이나 한계상황 분석(STRESS TEST)과 같은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조직의 변화 - 기능에서 프로세스로
전통적인 금융기관의 업무흐름은 각 조직에서 담당하는 기능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관리되어 왔다. 최근에 와서는 고객의 금융서비스 수요와 이를 만족시키기 위한 활동 즉 프로세스 중심으로 모든 금융기관의 업무흐름이 재편되고 있는 상황이나 경영관리부문에서는 아직도 많은 기관들이 기획, 관리, 영업추진 및 지원 등으로 분리되어 기능조직의 형태를 갖고 있다. 전사적인 위험관리 기능의 도입은 이같은 조직운영 형태를 전사적 목표의 설정과 배분, 그에 따른 자원배분과 한도의 설정, 업무 프로세스 전반에 걸친 통제기능 부여, 업무성과의 측정 및 피드백 등 일련의 프로세스로 재설정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경영 의사결정 및 업무수행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위험을 발생시점으로부터 인식하고 통제하여야 하는 위험관리 활동의 동적 속성에 따른 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금융기관의 위험관리가 단순한 재무위험의 통제수단으로 국한되지 않고 모든 업무 프로세스의 문제점이나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업무프로세스 재구축(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경쟁우위 핵심요소로서의 위험관리
전통적으로 금융기관의 경쟁우위는 금융기술의 축적이나 상품개발에 의한 서비스의 차별화(DIFFERENTIATION)와 이를 제공하기 위한 인적, 물적 및 금융비용의 절감을 통한 원가선도(COST LEADERSHIP)에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발전된 위험관리기법의 도입을 통해 다양한 금융거래에 따라 발생하는 이질적인 위험요소들을 모아서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관리함으로써 위험관리비용을 감소시키고 위험대비 수익률을 제고하는 위험관리능력이 금융기관간의 경쟁에 있어 핵심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고객이 보유한 재무위험을 금융기관으로 이전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고 이전된 위험에 대한 합리적인 가격(RISK PRICE)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같은 환경하에서 위험관리기능이 발전되지 못한 금융기관은 과거와 같은 재무위험에 따른 대규모 손실보다는 자체적인 경영관리의 비효율성과 시장 경쟁력의 약화에 의해 도태되는 환경 및 전략적인 위험(ENVIRONMENTAL & STRATEGIC RISK)을 안게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