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의 과학향기] 반도체 '황의 법칙' 지속될까

'전자 스핀' 이용 기술 개발땐 집적도 20나노 이상까지 가능


지난 46년 2월 15일 필라델피아시 전역에 정전이 일어났고 온 시민들은 정전의 원인을 궁금해 하고 있었다. 이때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수학자가 7~20시간 걸려야 풀 수 있는 계산문제를 30초 만에 푼 것이다.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이 작동한 것이다. 에니악은 무게가 30톤이 넘었으며 면적은 37평을 차지했고, 그 속에 들어 있는 1만 8,800개의 진공관은 150킬로와트의 전기를 사용했다. 그 후 벨연구소에서 발명한 트랜지스터는 반도체를 이용, 에니악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은 크기의 컴퓨터를 만들 수 있게 했다. 집적기술이 날로 발달하여 용량은 점점 커지면서 크기는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 이 희한한 현상을 설명한 법칙이 있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1년 6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하지만, 가격은 변하지 않는다"는 '무어의 법칙(1965)'이 그것이다. 이것은 "반도체 집적도는 1년에 두 배씩 증가하며 이를 주도하는 것은 모바일 기기와 디지털 가전 등 이른바 Non-PC 분야가 될 것"이라고 한 이른바 '황의 법칙(2002)'으로 발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법칙들이 곧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이 기술은 막바지에 이르러 45나노 이하의 공정에서는 황의 법칙(혹은 무어의 법칙)이 들어맞기 매우 힘들 다는 것이다. 해결방법은 발상의 전환이다. 지난 9월 11일 삼성전자는 40나노 32기가 메모리를 발표해 깨질 것 같았던 황의 법칙을 이어갔다. 삼성전자 기술자들은 전하를 도체가 아닌 부도체 물질에 저장하여 셀 사이의 간섭 문제를 해결한 CTF(Charge Trap Flash) 기술을 개발했다고 한다. 이 CTF 기술은 앞으로 20나노 256기가까지 집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이상의 집적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발상이 필요하다. 여러 해결 방안 중 대표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것은 '스핀트로닉스'다. 스핀트로닉스란 물질의 전하(+, -)를 이용하지 않고 전자의 스핀을 이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전자는 핵을 중심으로 공전하면서 동시에 자전을 하는데 이를 스핀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자의 자전방향은 시계방향과 반 시계방향 두 가지가 있다. 이를 이용해서 스핀을 위(up)와 아래(down)로 구분해 하나의 신호를 이용한다. 예를 들어, 스핀이 시계방향으로 돌면 '0', 반대방향으로 돌면 '1'로 인식할 수 있다면 전자 하나가 1비트가 되는 것이다. 원자에는 전자가 최소 1개(수소원자)에서 수백개까지 존재하니 이론상 원자 하나만으로 수백비트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전자의 스핀 현상이 관찰된 것은 이미 1940년대의 일이나 최근에 관심을 갖는 까닭은 이제야 측정기술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스핀 현상을 관찰하려면 나노초보다 더 짧은 펨토초(fs, 1조분의 1초) 동안 일어나는 현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스핀트로닉스는 나노기술과 뗄 수 없는 관계라서 '나노스핀트로닉스'(Nanospintronics)라 불리기도 한다. 앞으로 전자의 스핀 자체를 정보로 이용하는 방법이 고안되면 현재와 비교할 수 없는 집적도를 가진 메모리와 컴퓨터의 설계가 가능해질 것이다. 물론 나노스핀트로닉스 기술 혁명을 위해서는 우선 나노자성체의 근원적 의문을 풀어야 한다. 즉 나노자성체의 스핀방향의 이유, 스핀방향이 갑자기 바뀌는 과정, 양자 효과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반세기 전 트랜지스터의 발명으로 산업사회는 정보사회로 발전하였다. 전자의 전하뿐만 아니라 스핀 정보를 이용하여 전자의 이동을 제어하는 스핀트로닉스가 가져올 사회·문화적 변화가 얼마나 클지 짐작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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