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 장고끝에 어정쩡수(사설)

장고를 거듭해온 끝에 공기업민영화방안이 나왔다. 핵심 내용은 담배인삼공사·가스공사·한국중공업·한국통신 등 4대 공기업에 대한 특정재벌의 독점적 소유 지배를 막고 전문경영인제를 도입키로한 것이다.공기업 소유지분을 10%로 제한, 재벌에 경영권이 넘어가지 않도록 하면서 전문경영인을 계약제로 채용, 경영효율을 높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정부가 미루어오며 연구하던 숙제치고는 매우 어정쩡한 해답이다. 지난 93년 발표한 1차 계획과는 거리가 먼 것이어서 사실상 후퇴나 다름없다. 이같은 엉거주춤한 방안의 배경은 공기업 민영화가 곧 재벌의 경제력 집중 심화로 이어질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재계 판도를 바꿀만한 거대 공기업을 사들일 기업은 재벌밖에 없다. 따라서 민영화는 곧 재벌소유라는 등식이 되었다. 그렇게 되면 재벌의 문어발과 경제력 집중이 심화하고 독점적 이익을 안겨줄뿐 아니라 공기업의 공공성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정부가 민영화를 선뜻 추진하지 못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최근 한보·삼미 부도사태에서 보듯 무분별한 문어발 확장의 경제·사회적 폐해가 크고 정부에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벌에 대한 시각이 곱지 않은 국민들이 민영화를 재벌정책·산업정책과 관련,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고육책이라 이해한다. 그러나 이같은 하는둥 마는둥 식의 민영화는 안하느니만 못하다. 임기말이어서 정책추진이 어렵고 본래 목적이 훼손될 것 같으면 차라리 다음 정권에 넘기는 것이 낫다. 「재벌이 주인 아닌 경영」의 대안으로 전문경영인제를 도입했으나 이는 민영화의 전단계일 뿐이다. 물론 불가피성은 인정되나 민영화의 근본 취지인 경영의 자율성이나 경쟁력강화의 실현은 의문이다. 전문경영인 계약관계가 불분명하고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소지가 많아 경영과 인사의 자율권이 확보되었다고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 효율만을 강조하다보면 목표이익에 집착, 공기업의 공공성이나 공익부분은 훼손되게 마련이다. 임기내에 마치겠다고 서두르는 것은 옳지 않다. 다음 정권의 과제로 넘기는 한이 있더라도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민영화 방안으로 보완해야 한다. 개방시대에 공기업이라 해서 독야청청할 수는 없다. 외국기업과 경쟁할 수 있도록 체질을 강화하는 방안을 찾고 그 목표를 우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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