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초대석] 정세균 민주당 국가비전21委 본부장
대담: 황인선 정치부장
"앞으로 우리가 뭘 먹고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신산업정책을 잘 펼쳐야 한다는 말이이요. 외환위기 극복에 급급한 현 정부가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미래의 신산업정책을 충분하게 준비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정세균(52ㆍ사진) 민주당 국가비전21위원회 본부장은 미래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것이 새 정부 경제정책의 제1과제라고 말한다.
그는 또 정부가 경제운용을 자의적으로 하지 않고 법과 제도에 근거해 하며 경제정책을 투명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원칙과 신뢰의 경제'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시장경제 이념이라고 소개한다.
노 당선자의 핵심 경제참모인 정 본부장으로부터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들어본다.
-노 당선자가 운용할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개괄적으로 설명해주십시오.
▲당선자께서는 원칙과 신뢰라고 얘기하십니다. 원칙은 정부가 경제운용을 자의적으로 하지 않고 법과 제도에 근거해 한다는 뜻일 겁니다. 신뢰는 경제정책을 투명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가능하면 시장경제를 중시, 투명성과 공정성이 확보되는 가운데 모든 일이 시장기능에 의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지요.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는 일정 부분 정부가 개입해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경제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앞으로 우리가 뭘 먹고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신산업정책을 잘 펼쳐야 한다는 말이지요. 외환위기 극복에 급급한 현 정부가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미래의 신산업정책을 충분하게 준비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기업들이 알아서 하겠지만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적으로 신산업을 제시하는 것은 정부 몫입니다.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일도 필요하지요. 국가신용도와 국가위상을 높이는 일도 중요합니다.
지난 5년 동안에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국가신인도를 높이는 역할을 했는데 아직도 신용등급이 외환위기 이전으로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노 당선자의 강경한 재벌정책에 대해 재계의 우려가 높습니다. 재계의 우려를 불식시킬 묘안이 있습니까.
▲걱정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합의한 5+3원칙의 연장선상에서 못한 것을 하자는 것이지 새로운 규제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기업이 활발하게 운영돼야 돈을 벌어 세금을 내고 결국 국가경쟁력이 생길 것 아닙니까.
기업하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세금을 내며 '내가 이렇게 국가경쟁력 향상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면 걱정할 것 하나 없습니다.
단지 옛날에는 재벌그룹에 속하면 유리한 입장에서 경쟁을 했는데 이제 똑같이 경쟁하자는 것으로 분식회계ㆍ부당내부거래와 계열사간 상호출자 등 불평등한 것들을 없애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재벌이 누리던 특혜는 반칙입니다.
재벌에 속한 큰 기업도 법과 질서, 시장원리ㆍ경쟁원리에 의해 운영하면 전혀 불편할 이유가 없어요. 단지 탈법ㆍ불법 등에만 제재가 간다는 것입니다.
-벤처기업은 국가산업의 뿌리입니다.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말씀해주십시오.
▲벤처비리로 벤처기업이 수난을 많이 당했지만 벤처의욕이 꺾여서는 안됩니다.
코스닥시장은 주가조작ㆍ부당공시 등 시장을 해치는 부분들을 정리해주면 건전하게 성장합니다. 코스닥시장이 성장하면 벤처기업들도 직접금융시장에서의 자금조달이 한결 용이해질 것입니다.
벤처기업간 인수ㆍ합병(M&A)을 활성화하고 부실 벤처기업의 퇴출을 적절하게 하는 것도 벤처산업육성책입니다.
벤처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3%, 수출의 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벤처를 무시하거나 벤처비리와 혼동해서는 곤란합니다.
앞으로 국가경쟁력은 기술력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만큼 기술력이 중요한 시대에 벤처산업의 육성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증시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 증시의 주가지수가 저평가돼 있다고 합니다. 새 정부 들어서면 증시활성화가 급선무가 될 것 같습니다만.
▲우리나라 경제의 선진화는 건전한 증권시장의 활성화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제는 간접금융에 의존하던 시대에서 직접금융으로 바뀌지 않으면 기업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어요. 그러려면 투기장이나 다름 없는 증권시장을 이제 투자장으로 바꿔야 합니다.
지금도 투기하려는 세력은 많으나 투자하려는 세력이 없습니다. 이는 투명성 확보로 고칠 수 있습니다. 또 배당을 많이 해야 해요. 단기 매매차익 위주의 투자가 아닌 배당 위주의 투자를 해도 승산이 있을 정도로 배당수익이 많아져야 합니다.
증시의 저변도 확대하고 매수세력도 좀 넓혀야 합니다. 지금까지 추진해왔지만 연금과 기금의 증시투자를 확대해야 하지요.
지금 우리 증권시장이 저평가돼 연기금이 들어가는 걸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장이 투명해지고 배당 위주의 투자가 이뤄지고 저변이 확대되면 다시 개미군단이 붙게 마련입니다.
-노 당선자는 증시투명성 확보를 위한 방안으로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의 조기 도입을 약속해 재계의 걱정이 많습니다만.
▲겁낼 것 없습니다. 무조건 집단소송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분식회계를 했다든지, 부정공시를 했다든지, 주가조작을 했다든지 하는 경우에만 해당되지요.
특히 처음에는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큰 기업에 대해서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겁을 내는 이유가 뭡니까. 부당공시ㆍ주가조작을 하겠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노 당선자의 분배중시 경제정책을 실현하고 대선공약을 이행하려면 재정의 안정적인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재정건전화를 위한 항구적인 대책을 설명해주십시오.
▲국가재정을 늘리면서 씀씀이도 늘려야 건전재정이 이뤄집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이뤄왔던 건전재정 상태를 회복하려면 우선 높은 성장이 계속돼야 합니다.
성장에 의한 세수분배가 있어야 재정건전화를 이루고 공적자금 등의 국민부담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또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확고한 국정철학과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국가채무감축법ㆍ기금관리기본법ㆍ예산회계법 등의 재정 관련 법안도 하루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곧바로 대선기간 동안 뜨거운 쟁점이 됐던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공약 이행작업에 착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행정수도가 옮겨갈 대상지역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보십니까.
▲청주에 공항이 있습니다. 충청권으로 고속철도가 지나갑니다. 대전에 국립묘지가 있습니다.
대청호에 물도 있습니다. 일부 종합청사가 또 그리로 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행정수도가 갖춰야 할 건 이미 다 있습니다. 적정한 데 자리잡아 청사만 지으면 됩니다. 엄청나게 큰 수도를 만들자는 게 아니에요.
행정수도추진위원회를 만들어 합리적으로 판단해 대상지역을 선정하고 일정을 짤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견해를 듣고 국민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도 필요하겠지요.
-새 정부의 경제팀 진용은 어떤 인물로 짜야 한다고 보십니까. 또 금융감독기구 개편 등 경제부처 조직개편은 어떤 철학과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인사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건 좀 문제가 있지만 우선 경제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고 실물경제에 대한 이해가 높은 인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개혁적이어야 하고 도덕성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인 것 같습니다.
당선자께서 구상하는 정부는 '좋은 정부'이지 '작은 정부'가 아닙니다. 좋은 정부는 생산성이 높고 효율적이고 봉사하는 정부를 말합니다. 당선자께서 이를 생각하고 계시기 때문에 여기에 맞는 정부조직과 인사가 이뤄질 것입니다.
-당면한 현실로 볼 때 국가 최고지도자의 국정수행능력 중 경제식견이 으뜸인 것 같습니다. 곁에서 보시기에 노 당선자의 경제에 관한 식견은 어느 정도입니까.
▲당선자께서는 공부를 많이 해서 경제 부문에 있어 상당히 깊은 이해와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 참모들과 경제정책에 대해 토론하고 보고를 받을 때 전혀 어려움이 없을 정도의 식견을 갖고 계십니다. 그 정도면 국민의 기대에 크게 모자라는 일은 없을 겁니다.
사진=이호재기자
정리=구동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