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설이 돌 때마다 아내가 묻습니다. 「또 은행이야」하고.』한 은행간부의 자조섞인 푸념이다.
정부의 강력한 사정바람이 불면서 은행권이 또다시 사정설에 휘말리고 있다. 『모 은행장이 대출커미션 관련 비리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는다더라. 모 전직 은행장은 대출커미션 부분뿐만 아니라 사생활도 문제가 된다더라.』
소위 「카더라」방송에 은행원들의 눈과 귀가 집중돼 있다. 「믿거나 말거나」의 「카더라」방송을 무시해버릴 수도 있지만 은행원들은 오랜 경험상 그렇게 하지 못한다. 실제 은행장 구속을 경험했던 한 시중은행 직원은 설의 유용성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행장 구속 2∼3개월 전부터 비리관련설이 들렸습니다.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설은 더욱 구체화되면서「조여온다」는 느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지요.』
사정바람이 불 때마다 은행원들이 느끼는 자조는 사정 자체 때문이 아니다. 대출커미션을 받거나 실명제를 위반한 문제 등이 드러나면 당연히 사정대상이 돼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문제는 「정치적 사정」이다. 과거 정권초기나 말기에 통치권강화나 누수방지용, 또는 국면전환 등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사정에 꼭 은행원, 특히 행장이 포함되는 관행에 대한 푸념이다.
『결국은 힘이 없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주인이 없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되고요.』 주인이 없다보니 행장 등 임원선임에 정치권의 입김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고 이는 역으로 정치권이 그만큼 은행권을 사정의 단골 희생양쯤으로 가볍게 볼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최근 유치원 원생 모으듯 35개 은행장을 모아놓고 「자율결의」의 형식을 빌려 1%포인트 대출금리 인하를 선언케 했던 관의 행태 역시 은행의 자율권을 무시하는 관과 정치권의 시각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물론 여전히 금융권 자체에 변칙과 비리의 여지가 온존해 있는 우리의 금융관행도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금융계의 구태도 일부는 관행적인 관과 권력의 간섭행태 위에서 비롯됐다는 항변에도 귀를 기울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