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요즘 두 갈래의 싸움을 하고 있다. 시장과의 싸움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청와대와 기획재정부를 위시한 행정부와의 싸움이다. 시장만을 생각한다면 당장 다음달(2월8일 예정)이라도 기준금리를 소폭이나마 올리고 싶은 것이 한은의 솔직한 마음이지만 거시경제가 완전하게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행정부의 강한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기준금리의 방향도 결국 같은 줄기에서 가늠해볼 수 있다. 지표만 놓고 보면 기준금리의 인상 분위기는 무르익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26일 발표되는 지난해 4ㆍ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속보치)은 이변이 없는 한 전분기의 호조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자산시장에서는 수조원대의 뭉칫돈이 고금리를 쫓아 이동하고 있고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강화로 지난해 말 위축됐던 부동산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은행권의 예금 금리는 특판을 기준으로 5%선까지 올라 기준금리와의 차이가 두배 반에 이를 정도다. 기준금리가 사실상 '식물 금리'로 전락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성태 한은 총재가 지난해 말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간담회에서 "지금 우리는 문(출구)에서 이만큼 떨어진 위치에 있는 만큼 적당한 시기에 문을 빠져나가려면 조금씩 이동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지표상의 수치에 불과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미국도 아직 금리를 올릴 움직임이 전혀 없는 만큼 우리도 서둘러서는 안 된다(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는 이른바 '글로벌 공조'의 논리다. 여기에 경기가 살아났다고는 하지만 서민층은 여전히 어렵고 무엇보다 고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등 경기회복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수차례에 걸쳐 "상반기 내 출구전략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 대통령은 한술 더 떠 이 총재에게 "시장을 한번 가보라"는 말까지 했다. 정부는 '말의 성찬'에 머물지 않고 지난해 12월부터는 아예 '실력 행사'에까지 들어갔다. 기획재정부 차관이 '열석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시장에서는 "이 총재가 임기(3월31일) 안에 일을 저지르는 것(금리 인상)을 현장에서 막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파다하다. 3월까지만 금리를 올리는 것을 막으면 다음 총재가 서둘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 구도대로라면 이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하는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이 후임 총재로 유력한데 "상반기에는 출구전략에 신중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뜻을 거스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우리의 기준금리는 이 총재가 임기 전 전격적으로 액션을 취하지 않는 한 상반기까지는 동결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