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부시] 세금줄이고 통상압력은 세게
■ 美대통령 부시확정-국내외 정책방향
예상치 못한 개표 혼란을 거쳐 12일 연방대법원 판결로 천신만고 끝에 백악관행 열쇠를 사실상 거머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당선자의 워싱턴 입성을 미국의 강력한 보수주의 회귀로 직결시키려는 시각은 많지 않다.
공화당 '적통'(適統)임을 내외에 천명해온 부시가 대선 기간을 통해 보여준 노선은 이른바 '중도 보수주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을 규정하는 중도주의적 진보주의와 사실상 극대극(極對極)의 대비가 되지 않는 세계관이다.
애매모호한 이미지로 공화당 매파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던 그의 이 같은 선택은 세계화시대, 그 나름의 국가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게다가 개표 과정에서 빚어진 초유의 혼란과 분열을 수습해야만 하는 그가 펼칠 보수적 정책에는 태생적 한계가 따를 수 밖에 없다는 분석도 가능한 추론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부시의 비(非) 강성적 색채와 상황논리에도 불구 이면에 감춰진 그의 미국 우월주의는 적어도 미국이외의 국가들에 있어 간과해서는 안될 사항이다. 국내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세계 각국과의 이해가 상충된 경제 및 대외 정책 속에는 자신감을 넘어 오만해 보이는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배어 있음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대외 문제 중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 대내 부문 중 소수계보다 백인 부유층을 위한 감세 정책 등은 그 전형적 사례들이다.
◇미국내 경제 정책=부시가 선거 기간 중 고어와 가장 첨예하게 맞붙었던 문제는 재정 흑자 처리와 연계된 감세 건(件)이었다. 부시는 클린턴 집권기간 경제 번영은 공화당 레이건과 부시 대통령 시절인 지난 80년대 잉태됐다는 주장을 줄곧 펴왔다. 80년대 이뤄진 세금 인하와 각종 규제 완화, 그리고 자유 무역 확대 등이 벤처를 비롯 이른바 신경제 산업 자본의 조성을 가능케 했고 이것이 90년대 번영의 기초를 이루었다는 논리다.
그는 이번 선거유세 기간 중 전대(前代) 공화당이 주창했던 것과 흡사한 경제 정책론을 펼쳤다. 조세 정책과 관련해서는 7,92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세금을 감면, 기업들의 조세 부담을 덜어주고 이를 투자로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부시의 이 같은 선거 공약이 실현될 경우 미국인들이 손에 쥐게 되는 현금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 같은 실질 소득 증가는 증시를 비롯, 금융 시장의 활성화를 촉진해 미 경제 전반이 탄력을 받을 것이란 데도 상당수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장밋빛 전망에 대한 정반대의 견해도 쏟아지는 상황이다. 즉 고소득층과 기업들에 유리한 정책이 거대 자본의 시장 지배력을 한층 더 심화시킬 것이란 지적이 그것이다. 이밖에 빈부 격차를 비롯 소외 계층 확대 문제 또한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제기되는 상당수 미국인들의 우려다.
◇대외 경제 정책=대외 무역과 관련 그동안 부시는 통상 압력 강화를 주창해왔다. 그는 세계 시장에서 미국이 리더십을 발휘함은 물론, 공정한 세계 무역질서를 위해 자유무역과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지지하고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과 환경문제와 연계된 무역 등 특정 부문에서 고어보다 유연한 입장임에도 불구, 부시 등장을 유럽과 아시아 등과 본격적인 무역 마찰의 신호로 연결시키려는 일부 전문가들의 우려는 바로 이 같은 그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적 경향에서 비롯된다.
유럽연합(EU)과의 경우에서 특히 사안은 보다 냉랭해 분위기다. 미 정부의 수출 보조금 문제를 비롯, 유전자 변형 농산품 수출 등 현안에서 미국과 EU사이에 이미 시작된 전면전의 전운이 거둬질 여지는 별로 없다.
한편 아시아 각국 역시 유사한 형태의 전선(戰線)으로부터 결코 멀리 비켜나 있지 않다. 미국의 농산물 수출, 무역 역조, 불공정 무역 관행, 지적 재산권 등 통상 현안을 둘러싼 한국ㆍ일본ㆍ중국과 미국사이 갈등은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자칫 전면적으로 확전(擴戰)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세계 무역업계의 진단이다.
홍현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