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건수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국세청의 방향은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지론과도 맥이 통한다. 이 부총리가 강조하는 정책기조의 근간은 ‘기업(起業)하기 좋은 나라’. 기업인(企業人)들이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 부총리는 기회가 날 때마다 이를 강조하고 있다. 세무조사 최소화라는 방향은 17대 총선에서 승리하며 국회 과반의석을 점한 열린우리당의 민생위주, 실용주의 정책과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경제회생에 올인하는 데 세정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외국계 기업에 대한 조사도 마찬가지다. 외자유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외국계 기업에 대한 조사를 가능한 억제할 방침이다. 내국법인과 별도로 발표한 외국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방향을 올해부터 함께 공표하기로 한 것에도 내외국 법인을 똑같이 대우한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 우리와 경제중심축(Hub)을 놓고 경쟁하는 국가들이 연이어 법인세를 내리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법인세체제는 변함이 없다는 점도 외국계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의 빈도를 줄여야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건수 줄여도 조사 강도는 강화=
세무조사가 크게 줄었던 지난해와 같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실제 대상은 탈루 혐의가 짙거나 5년 이상 조사를 받지 않은 법인 등에 국한될 전망이다. 더욱이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중소기업에 대해 세무조사를 유예한다는 방침도 정해져 있어 조사대상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새로 창업한 생산적 서비스업과 벤처기업 등 창업중소기업은 오는 2006년까지 3년간(지방 소재 기업은 5년간), 고용증대 기존 중소기업의 경우 2년간(지방은 3년간) 세무조사가 유예된다. 외국계와 고용창출 및 증대 기업에 대한 조사를 면제할 경우 남는 게 없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조사가 점점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중장기 추세”라며 “대신 조상대상으로 선정된 법인에 대해서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샅샅이 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세청은 이미 세금을 탈루한 의혹이 있는 3만5,000여개 법인을 특별관리 중이다. 국세청은 기왕에 실시할 세무조사라면 그 세기가 절대적으로 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체 법인세 신고분 가운데 95%가 자진신고인 마당에 ‘부실신고할 경우 철저한 조사가 뒤따른다’는 인식이 옅어지면 세금 거두기가 어려워지고 결국 국가재정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수부족 우려가 변수=
문제는 세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경기침체 속에서도 거둬들인 법인세는 25조6,327억원. 처음으로 20조원선을 넘어선 것은 물론 목표를 훨씬 넘어선 규모다. 기업들이 호황을 누렸던 2002년 실적으로 기준으로 부과됐기 때문에 이 같은 법인세 수입이 가능했지만 올해 세수전망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2003년 실적이 좋지 않은 탓이다. 세수 추계를 담당하는 재경부 세제실의 한 관계자는 “생각보다 세수 진도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지난해보다는 여건이 안 좋은 것이 사실이다. 국세청은 경기침체로 발생할 수 있는 세수부족은 음성탈루 소득 색출과 과세강화로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법인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전문직과 호화사치업종에 대한 조사도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생산적인 부문은 지원하지만 그렇지 못한 곳에는 메스가 가해진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