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칼라 범죄 현장검증때 포박 "풀어라" VS "못푼다"

재판부- "재판의 일부…수갑 벗겨야"
법무부- "도주·자해등 우려…어렵다"

'현장검증 위해 포박 풀어라 vs 규정상 포박해야 한다' '현대차 계열사 채무탕감 뇌물' 사건 피고인의 현장검증과 관련, 수갑과 포승줄 등 계구(戒具)를 사용하는 문제를 놓고 재판부와 법무부가 갈등을 빚고 있다. 이 사건을 맡고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부(이종석 부장판사)는 최근 열린 공판에서 현대차그룹 브로커로 활동한 혐의를 받고있는 김동훈(전 안건회계법인 대표)씨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과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를 상대로 현장검증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김씨는 수억원을 변씨와 박씨에게 각각 전달했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변씨와 박씨는 일체 받지 않았다며 금품 수수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자 돈을 건넸다는 장소에서 재연을 통해 사실관계를 따지기로 한 것이다. 재판부는 자연스런 분위기 속에서 당시 상황을 재연하기 위해 이들 피고인의 포박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지만 미결수 관리를 책임지는 법무부가 규정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재판부는 외부로부터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피고인들에게 사복을 입혀 포박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다. 법무부는 이에대해 사복착용까지는 동의했지만 현장검증이 교도소나 법정이 아닌 제3의 장소여서 도주와 자해 등의 우려가 있는 만큼 수갑은 물론, 포승줄로 이중 포박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있다. 재판 권한을 갖고 있는 재판부는 현장검증도 재판의 일부인 만큼 독자적인 방식으로 현장검증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법무부는 법정 밖에서 수용자 관리ㆍ감독 책임 의무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살인 등 강력범죄 피고인에게는 재판부나 법무부 모두 포박의 필요성을 공감했기 때문에 갈등의 여지가 없었지만 '화이트칼라 범죄' 피고인의 포박을 놓고는 진실을 밝혀야 하는 재판부와 관리 책임이 있는 행정부가 갈등을 빚고있는 것이다. 재판부는 법무부가 계속 반대 입장을 고수한다면 현장검증도 재판의 연속인 만큼 현장에서 직권으로 포박을 풀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재판부는 대신 법무부측의 우려를 의식해 피고인들에게 포박하지 않더라도 도주 등 돌발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종석 부장판사는 "현장검증도 재판의 연속인 만큼 재판부 주문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한편 재판부는 지난 17일 현장검증을 비공개로 열 예정이었으나 계구 사용 문제에다 검증 날짜와 시간이 알려지는 바람에 검증 기일을 연기했으며 아직 기일을 잡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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