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10월14일] 데밍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여름 도쿄. 생산촉진 세미나 참석자들이 귀를 의심했다. 중년의 강사가 ‘선진국 제품을 베낀 데 불과하다는 일본 상품의 이미지를 5년 안에 바꿀 수 있다’고 장담했기 때문이다. 비법은 ‘통계적 품질관리’. 따라 했더니 2년 만에 효과가 나타났다. 일제 상품이 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사는 데밍(W Edward Deming). 미국인 통계학자다. 1900년 10월14일 가난한 시골 변호사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8세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공학과 수학ㆍ물리학을 공부했다. 통계와 품질관리를 접목하는 방법은 예일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학비조달을 위해 일했던 웨스턴일렉트릭과 벨연구소에서 배웠다. 졸업 후 미국 농무부와 통계국에서 일하며 전쟁물자 품질관리에 관여한 그는 종전 후 일본에서 기회를 맞는다. 점령 군사령부가 일본 경제를 지도할 전문가로 초빙한 것. 일본인들은 그를 반겼다. 품질을 중시하는 코드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얼마 안 지나 도요타자동차 같은 대기업에 데밍의 사진이 걸렸다. 전후 일본의 어려운 사정을 생각해 강의와 출판에 돈을 받지 않았던 데밍에 대한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데밍상은 아직까지 세계 최고의 품질관리상으로 손꼽힌다. 미국이 데밍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이후. TV에서 데밍 특집을 방영하고 기업들은 데밍의 기법을 역수입하는 데 열을 올렸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7년 미국판 데밍상인 ‘말콤 볼드리지상’을 만들었다. 데밍은 1993년 사망 직전까지 병마와 싸우며 미국 기업의 체질을 바꾸려고 애썼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데밍은 미국 경영진을 이렇게 질타했다. ‘불가능한 목표를 강요하지 마라. 문제의 95%는 경영진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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