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1일 미국 방문길에 오른다. 부시 미국 대통령과 취임후 첫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서다.
과거 대통령들도 취임하기가 무섭게 미국을 찾았지만 노 대통령의 이번 방미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검증받기 위해, 문민정부(김영삼)나 국민의 정부(김대중)가 `한ㆍ미간 동맹관계`를 재확인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와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우 청와대 새 주인들은 미국에 건너가 미 대통령과 `악수`하며 `같은 편`임을 각인시켜주면 그만이었다. 북핵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 지 한ㆍ미간 공조를 어떤 방식으로 유지해 나갈 것인 지 양국간 첨예한 이해가 부닥쳐 있는 통상문제와 경제협력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 지 미주알 고주알 다 따질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어떤 얘기가 오가느냐에 따라 한반도가 기회를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위기의 길을 자초할 것인지가 확연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실리(實利)중심 정상외교 = 노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자주 외교와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강조해 온 점도 이번 방미가 예전과는 차이가 있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미국에 들어가 눈에 띄는 성과를 갖고 돌아올 가능성은 반반이다. 북핵, 반도체, 국가신용등급, 시장개방을 둘러싼 양국간 이해가 복잡하고 첨예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화 상대는 대북 강경주의자인 부시대통령이다. 부시대통령 주변을 포진하고 있는 매파와 비둘기파의 대립양상도 큰 부담이다.
노 대통령은 이런 점들을 감안해 “대통령의 외국방문이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미래 지향적이고 실용적인 개념으로 이뤄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7일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도 이제는 실무적 방식을 지향할 때가 됐다”며 형식보다는 실질적 효과, 실리를 추구할 수 있는 방미일정을 소화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북핵문제 해결위한 한ㆍ미 공조가 핵심 = 노 대통령은 이번 방미의 목적에 대해 “현안은 북핵문제에 대한 한미공조, 주한미군 문제, 한미 경제협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무게 중심은 북핵문제로 쏠려있다. 경제협력이나 반도체, 철강, 자동차, 스크린쿼터등 통상현안문제는 부수적인 의제로 뒤로 밀려나 있다.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통일국제협력팀장은 “북한문제에 관한 한 시간이 우리에게 불리하다”며 “이 문제를 풀기위한 실무적 로드맵까지는 아니더라도 양국 정상간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평화적 해결방향의 큰 테두리만 정하더라도 큰 성과”라고 지적했다.
◇경제사절단 대거 수행 = 노 대통령의 7일간의 방미 일정은 크게 나눠 13,14일 정치일정과 12,15,16일 경제일정으로 짜여진다. 하이라이트는 오는 14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가질 정상회담. 35분 가량의 회담에 이어 1시간25분간의 만찬회담 등 2시간 정도로 예정돼 있다. 세일즈활동도 펼친다. 이번 일정에는 한국에 대한 투자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텔사 방문, 미 상공회의소 주최 오찬연설, 뉴욕 증권거래소 방문, 로버트 루빈 시티그룹 이사회의장(전 재무장관)면담등 경제외교가 포함돼 있다. 노 대통령의 세일즈외교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내 경제5단체장과 굴지의 대기업 총수, 벤처기업 대표들이 총출동한 27명의 기업인들과 신동혁 은행연합회장, 오호수 증권협회장등 4명의 금융계 대표등 31명의 경제인들이 대통령을 수행한다.
◇경제회복 기대 = 김창록 국제금융센터 소장은 “양국 정상간에 북핵문제에 관한 합의만 잘되면 전쟁리스크로 인해 움츠러 들었던 금융시장도 안정을 되찾는 등 우리 경제의 펀더맨털과 잠재성장성이 다시 활력을 되찾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기적 성과라면 더욱 좋겠지만 예측가능한 중장기적 북핵문제 해결방안만 나와주더라도 경제의 한 단계 도약을 약속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빈 손으로 올 경우에는 되레 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많다. 전홍택 한국개발연구원(KDI)부원장은 “북핵문제를 놓고 한미간에 얘기가 잘 될 경우에는 우리 경제에 매우 포지티브(긍정적)한 영향을 주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기대감 상실로 인해 더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동석기자 everes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