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인승 헬기 ‘벨 412’에 몸을 싣고 부산 김해공항을 이륙한 지 7분 만에 끝없이 펼쳐진 동해를 만났다. 울산 남동방향 58㎞ 해역에 위치한 ‘산유(産油) 한국’의 출발지 ‘동해-1’ 가스전은 이후 시속 110노트(시속 약 200㎞)로 23분여를 더 날아간 뒤에야 찾을 수 있었다. 고깃배와 상선 이외에는 짙푸른 파도만 넘실대는 망망대해에서 가스전을 발견하고 산유국의 꿈을 이룬 것이 믿기지 않았다. 가스전 해상플랫폼은 수심 150m 깊이에 기둥 4개를 세우고, 다시 8개의 파일을 해저 70m까지 박고 섰다. 수면 위 높이는 47m, 가장 긴 쪽 가로 길이가 60m로 플랫폼의 연면적은 380평 정도다. 플랫폼의 최상부인 헬기장을 제외하고는 평평한 공간 없이 계단과 통로뿐. 나머지 공간은 대부분 기계설비가 차지하고 있었다. 주변을 24시간 순찰하는 경비정을 제외하고는 바다와 끝없는 수평선만이 유일한 친구인 이 작은 인공 철탑 섬에 한국석유공사 해상운영팀 40명이 2개 조로 나뉘어 각각 2주씩 교대로 상주한다. 시설운영 및 보수를 도와줄 영국ㆍ러시아 엔지니어 10여명도 끼어 있다. 한국 직원들은 2주 근무 후 고향으로 돌아가 2주간 휴식을 취하고 복귀하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항공료 부담 때문에 외국인 엔지니어는 한달 주기로 일과 휴식을 번갈아 하고 있다. 안전상 문제로 기지국을 설치할 수 없어 휴대폰은 사용할 수 없지만 전화와 인터넷 이용이 가능하고 탁구 등 간단한 실내운동도 즐길 수 있을 만큼 편의시설은 갖춰져 있다. 물론 공용화장실 이외에 전구역에서 금연이다. ‘에너지 자주’의 역군들 앞에는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플랫폼 통로와 계단에서는 잠시 한눈만 팔아도 아찔한 순간을 맞기 십상이고 기상이 조금만 악화되면 집채만한 파도와 거센 바람이 플랫폼을 때린다. 무엇보다 바다 한가운데 고립돼 있다는 심적 부담감이 크다. 이재형 석유공사 과장은 “단조로운 생활과 고독감 등으로 이따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멍한 정신상태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태풍이 잦은 8~9월에는 고립감에 공포까지 겹친다. 플랫폼은 초당 50m 속력의 바람에도 버틸 수 있게 설계돼 있지만 태풍 속에서 평상심을 유지하기는 베테랑 기술자도 힘든 일이다. 부범석 가스전관리소장은 “폭풍 소식에 직원들의 동요가 심해 상당한 비용손실을 감수하고 지난 여름 딱 한번 해상플랫폼 직원들을 철수시킨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일촉즉발의 환경 속에서도 해상플랫폼 한 쪽 끝으로 뻗어 있는 가스관에서는 가스생산을 상징하는 불꽃이 24시간 타오르고 있다. 동해 가스전의 생산이 끝나는 그날까지 타오를 성화다. 가스생산은 플랫폼에서 1.8㎞ 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해저 2,400~2,700m까지 뚫고 들어간 가스 생산관 3공이 가스를 끌어올리면서 시작된다. 각 생산공은 ‘크리스마스 트리’로 불리는 원격 제어장치가 플랫폼 기술자의 명령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 플랫폼으로 가스를 보낸다. 해상플랫폼에서 1차로 물과 불순물을 정제한 가스는 다시 60㎞의 해저 배관망을 타고 울산 육상기지로 옮겨지고 여기서 2차 정제를 거친 뒤 인접한 한국가스공사의 전국 배관망을 타고 소비지에 이른다. 이렇게 생산되는 천연가스가 일평균 5,000만입방피트, 무게로는 약 1,000톤 정도다. 석유공사는 이를 통해 계절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하루 5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동해-1 가스전의 전체 매장량은 2,500억입방피트(LNG 환산 500만톤)로 향후 15년간 울산ㆍ경남 지역에 매년 40만톤의 천연가스를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석유공사는 이달 말부터 ‘동해-1’ 가스전에서 북쪽으로 60㎞ 떨어진 지점에서 가스탐사에 나선다. 가스전이 발견되면 동해-1과 가스관만 이으면 돼 경제성 확보에 용이하다고 한다. 척박한 자원개발 현장에 자원해 뛰어든 한국의 에너지 프런티어들은 저 높은 곳 성화가 꺼지지 않도록 어디선가는 계속 타오르도록 하는 데 일생을 바치고 있다. 20년을 자원개발과 함께 한 부 소장은 “선배들에 비하면 개발에서 생산까지 맛본 우리는 행복하다”며 “후배들이 앞으로 한반도와 전세계를 무대로 더 많은 자주적 자원개발의 횃불을 밝혀주기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