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갑부, ‘컴퓨터 천재’로 불리는 빌 게이츠(53) 회장이 지난달 27일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마지막 근무를 하고 눈물을 흘렸다. 워싱턴주 레드먼드시의 MS 본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그는 20년 오랜 친구이자 경영권을 물려준 스티브 발머 최고경영자(CEO)와 직원 800명의 앞에서 숨가빴던 지난 30여년을 회고하며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게이츠의 아름다운 퇴장은 전세계 경영인들의 은퇴문화를 한층 끌어올리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지 않은 아시아의 재벌 경영에 큰 시사점을 던졌다. 그는 앞으로 이사회 의장직만 맡으며 일주일에 하루만 회사에 출근하면서 자선사업에 몰두할 계획이다. 580억 달러(약 60조원)의 재산가인 그는 개인 재산 대부분을 자신과 부인이 설립한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애 따르면 게이츠는 세계 최고 부자라는 타이틀에 늘 부담을 느꼈고, 자선사업을 통해 그가 모은 부의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말해왔다. 20세기초 스탠더드 오일의 창업자 존 록펠러가 독점의 오명을 뒤집어 쓴후 재단을 만들어 면죄부를 사려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게이츠는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 8학년(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바둑판의 오목놀이와 비슷한 게임을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언제나 프로그래밍한 대로 오차 없이 움직이는 기계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17살이 되는 해에는 죽마고우인 폴 앨런과 ‘트랩-오-데이터’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2만 달러를 벌어들인 적도 있다. 게이츠가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두각을 나타낸 데는 유명 변호사인 아버지와 대기업 임원인 어머니의 슬하에서 부유하게 자란 덕도 컸다. 게이츠는 1973년 대학수학능력시험(SAT)에서 1,600점 만점에 1,590점을 받고 레이크사이드 고교를 졸업한후 하버드대학에 입학했다. 하버드 입학 당시 게이츠는 이미 어지간한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에 능통한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게이츠는 명문대 입학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끊임없이 기회를 엿봤다. 1975년에는 하버드대학을 중퇴하고 폴 앨런과 함께 단돈 1,500달러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다. 하버드대 동창이자 그의 후계 경영자인 스티브 발머는 졸업 후 1980년부터 참여했다. 이들은 처음에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PC)인 MITS사의 알테어8800에 맞는 BASIC 프로그램 언어를 작성해 팔았다. 그리고 게이츠는 곧 더 큰 기회를 잡았다. PC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IBM과 프로그램 개발 계약을 맺었다. 1981년 게이츠는 IBM의 PC를 위한 운영체제(OS)인 MS-도스를 개발해냈고, PC 판매량만큼 수익을 내게 됐다. 그리고 꼼꼼하게도 도스의 저작권을 확보해놨던 덕에 세계적으로 PC산업이 규모를 늘려가는 과정에서 수익을 불려갈수 있었다. 그러나 컴퓨터 운영체계 시장에 곧 경쟁이 치열해졌다. PC업계 선구자인 스티브 잡스의 애플사가 IBM에 뒤질세라 PC와 OS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 무렵 게이츠는 IBM을 위한 차세대 운영체제 개발에 착수하는 한편, 비공개로 ‘윈도’를 만들어내는데 주력했다. MS는 1985년 마침내 윈도의 첫 버전인 ‘윈도 1.0’을 출시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속도가 느린 데다 불안정한 OS라는 혹평을 받았다. 이어 윈도 2.0 과 2.3 버전을 개발해냈지만 시장은 무관심했다. 1990년에 가서야 윈도 3.0이 출시되면서 MS의 윈도 판매수익이 도스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게이츠는 이 시점에서 재빠르게 움직였다. 윈도가 앞으로 OS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IBM과의 파트너 관계를 끝낸다고 선언했다. 1995년 ‘윈도 95’가 출시되면서 이 같은 확신은 증명됐다. 전세계 PC의 OS는 윈도로 통일됐고, 지난해 10월 조사결과 윈도 시리즈의 OS시장 점유율은 92.63%에 달했다. 하지만 게이츠의 성공신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칭찬만 듣고 산 것은 아니다. 윈도가 세계시장을 석권하자 ‘독점기업’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었고, 윈도에 포함되는 인터넷 브라우저, 미디어플레이어 등은 ‘끼워팔기’ 논란에 휩싸였다. 게이츠는 “OS가 통일되었기 때문에 전세계에 PC가 널리 보급될 수 있었다”고 반박했지만, 게이츠는 독점기업가 이미지가 게이츠에 얽매였다. 그 사이에 ‘제2의 게이츠’를 꿈꾸는 프로그래머들이 개발한 리눅스나 파이어폭스 등이 MS의 빈틈을 끊임없이 재기를 노렸다. MS의 성공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안팎으로 독점 논란에 휩싸이면서 게이츠는 은퇴해 자선사업을 할 것을 구상한다. 2000년초 미국 연방 정부가 MS에 대한 기업분할을 추진하자 게이츠는 그의 오른팔 역할을 해온 발머에게 CEO직을 물려 줬다. 발머가 MS의 경영권을 맡았지만, 허울에 지나지 않았다. 게이츠가 사실상 경영의 전권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1년간 경영권을 놓고 심한 말다툼을 벌이며 사사건건 부딪쳤고 마침내 2001년에 두 사람은 합의점을 찾았다. 게이츠가 2인자로 물러서고, 발머가 경영의 대표권을 행사한다는 것. 그후 2006년 6월 게이츠는 “2년 뒤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지난달 27일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게이츠는 퇴임식에서 한 직원이 “그동안 가장 큰 실수가 무엇이었는가”라고 묻는 질문에, “큰 변화의 기회를 놓치고 뛰어난 인재들을 그 기회에 기용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인터넷 검색시장의 변화를 뒤늦게 인식해 MS가 이 시장에서 구글과 야후에 밀린 것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것이 나타날수 있도록 MS에서 비켜나 서있겠다고 퇴임의 변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