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이른바 '불금'의 밤 신사동 가로수길에 400여명의 남성들이 마치 불나방처럼 모여들었다. 이들의 목적지는 하이트맥주가 가로수길에서 운영하고 있는 '프로즌 기린 이치방' 플래그십스토어. 스타일리시하게 차려입은 30~40대 남성들의 행렬이 줄을 이어 행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행사명은 '시어서커(seersucker) 데이' 파티. 일명 '지지미'로 불리는 여름용 시원한 원단인 시어서커로 만든 슈트를 입고 오는 드레스코드에 맞춰 붙여진 파티명이다. 원래 시어서커 데이는 1996년부터 미국에서 생겨난 여름 연례 행사로 과거 1950년대 미국 상원의원들이 시원한 시어서커 원단의 슈트를 입던 전통을 부활시킨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의 파워가 거세지면서 금녀의 공간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 이날 이 공간만큼은 남성들만 출입이 가능한 사교의 장으로 변신했다.
시어서커 데이 행사를 주최한 패션 행사 에이전시인 피플오브테이스트의 이선희 매니저는 "단순한 패션 행사가 아니라 시어서커라는 독특한 드레스코드를 매개로 남성들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모임"이라며 "남성들만의 공간에 대한 욕구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실제로 밖으로 나와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는 점에 착안해 이 같은 행사를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이날 최신 패션 스타일로 잔뜩 뽐낸 남성들은 트럼페터 데이먼 브라운의 재즈 밴드 '데이먼 브라운 트리오'의 재즈 공연과 맥주를 즐기며 삼삼오오 모여 패션과 뷰티ㆍ경제 등 이런저런 화제를 넘나드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VIP 남성들의 힐링 공간으로 손꼽히는 남산 회현동 스테이트타워 26층에 자리한 '더스테이트룸'. 이곳을 찾는 이들은 기업 임원, 법조계, 외국기업 관계자 등 대한민국 상위층 인사들이 대다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육중하게 버티고 있는 철제문을 통과하면 누구든 줄곧 거칠었던 맥박이 느려지고 부지불식간에 편한 호흡을 내쉬게 된다. 실내에는 독서와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방,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스위트룸, 영화 감상 공간, 스파와 주문형 양복점 '비스포크' 등이 있어 찾는 이들 대부분이 남성 고객임을 눈치챌 수 있다.
이날 혼자 이곳을 찾은 모 기업 임원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 조용히 생각을 정리할 때 와서 와인이나 싱글몰트 위스키를 즐겨 찾는다"며 "피로가 극심할 때는 두피 마사지나 스파를 통해 스트레스를 푼다"고 말했다.
힐링의 공간은 회원들의 니즈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탈바꿈된다. 친목을 위해 분기별로 리셉션 칵테일 파티가 열리면 술잔을 기울이며 지식과 정보를 나누면서 소통한다. 또 요트ㆍ승마ㆍ패러글라이딩 등 레포츠 액티비티를 즐기며 호흡을 같이하기도 한다.
업체 측은 현재 SK-Ⅱ와 손잡고 다음달에 있을 피부 관리법, 슈트 착용법, 자동차 관리법 등에 대한 프로그램을 논의 중이라고 귀띔했다.
여성과 가족 위주의 마케팅이 주류였던 호텔업계도 최근 '남심'을 어루만지는 서비스를 내놓기 시작했다.
임피리얼팰리스호텔은 특급 호텔 중 유일하게 남성을 위한 프라이빗 멤버십 바인 '마에스트로'를 운영하고 있다. 라이브로 연주되는 음악에 스카치위스키ㆍ몰트위스키ㆍ코냑ㆍ데킬라ㆍ칵테일 등 각종 주류는 기본이며 멤버십 전용인 4개의 가라오케, 46석의 별실이 마련돼 있어 친목 도모에도 안성맞춤이다. 쿠바산 시가, 코히바 등 12가지 시가도 판다.
롯데호텔서울은 8월 말까지 비즈니스맨들을 위한 패키지 2종을 선보이면서 슈트 드라이클리닝, 공항 픽업 서비스, 아사히 맥주 세트 제공 등을 포함시켰다.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스파에 남성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그랜드하얏트서울은 비즈니스맨을 위한 토털 그루밍 프로그램인 '뉴 CEO 익스피리언스(New CEO Experience)'를 운영하며 맨즈 매니큐어 서비스까지 해준다.
플라자호텔의 플라자스파클럽은 '알코올 디톡스' 프로그램을 통해 스파 서비스는 물론 숙취 해소에 즉각적인 효과를 주는 디톡스 주사도 마련해놓고 있다.
헬스앤뷰티 쇼핑 공간인 CJ올리브영의 명동 본점 라이프스타일 체험센터에도 젊은 남성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CJ올리브영과 케이블 방송 남성 전문채널인 XTM이 화장품을 사용하는 남성을 위해 만든 'XTM 맨즈콜렉션'에 방문하기 위해서다. 남성 전용공간이 설치돼 있어 아직은 남들 눈치를 보기 쉬운 화장품 쇼핑을 맘 편하게 할 수 있다. 이곳 이용자들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화장품을 고를 때 꼼꼼히 발라보고 비교해볼 수 없었지만 여기에서는 구입 전 체험해보고 비교해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쇼핑 공간 한켠에는 남성 전용 뷰티 체험공간인 '바버숍'과 '슈샤인'이 마련돼 이발소처럼 꾸며진 바버숍에서는 헤어 드라이어와 다양한 헤어 제품을, 구둣방처럼 장식된 슈샤인 코너에서는 구두 손질 제품을 자유롭게 체험하면 된다.
매장에서 만난 윤제서(39)씨는 "직접 화장품을 사는 게 다소 부끄러웠는데 남성 전용공간이 생기니 다른 사람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고 직접 써보고 쇼핑할 수 있어 편리하다"며 즐거워했다.
CJ올리브영은 명동을 비롯한 홍대ㆍ대학로 등 10여개 매장에서 남성 전용 쇼핑공간인 'XTM 맨즈콜렉션' 존을 운영하고 있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남성 고객들의 니즈를 발 빠르게 파악해 트렌디한 감성의 남성 전용 브랜드를 늘려나갈 계획"이라며 "XTM 맨즈콜렉션 존도 점차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