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 MBC 사장 등 임원 8명이 일괄 사표를 제출한 것은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김우룡 이사장 등 친여 성향 이사들의 엄 사장 사퇴 압박과 무관하지 않다. 방문진 이사진의 과반(9명 중 6명)을 차지하는 김 이사장 등 6명의 친여 성향 이사들은 줄곧 엄 사장을 비판해 왔다. 이사진 9명 중 5명이 찬성하면 엄 사장의 사표가 수리된다. 엄 사장의 중도낙마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다.
친여 성향 이사들은 최근 열린 이사회에서 엄 사장이 추진하는 '뉴 MBC 플랜'에 대해 "급격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MBC의 경영혁신을 위한 큰 밑그림이 미흡하다. 또 엄 사장이 11월 말까지 단체협약의 일부 조항을 개정하겠다고 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성과가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 논란이 됐던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와 '100분 토론'의 시청자 의견 조작에 대해서도 "경영진의 개혁의지와 실체 규명 노력이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일부 이사들은 노조에 휘둘리는 경영진으로는 MBC를 개혁할 수 없다며 엄 사장의 퇴진을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김 이사장은 "엄 사장이 노력은 많이 했으나 결실은 적다고 본다. 가시적 성과가 없으면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공언한 엄 사장이 (거취를) 스스로 검토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는 말까지 했다. 김 이사장은 9일에도 '사표 처리기준'에 대해 "경영실태나 '뉴 MBC 플랜'을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도 있고 특정 부서의 불리한 사건의 책임 물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엄 사장은 지난 9월 노사협의체인 미래위원회를 통해 단체협약 재검토, 공정성위원회 운영, 미래전략과 중장기 인력계획 수립ㆍ시행 등을 골자로 한 '뉴 MBC 플랜'을 발표했다. 이번의 사표 제출은 "성과가 미흡할 경우 재신임을 받겠다"는 당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엄 사장 등의 사표가 수리되면 당분간 MBC의 경영공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경우 방문진은 MBC 사장 공모를 실시하고 주주총회에서 새로운 사장을 정식 선임해야 한다.
하지만 MBC 내부에서는 엄 사장의 사표가 수리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MBC 한 관계자는 "일부 임원진의 사직서는 수리되겠지만 MBC의 상징인 엄 사장은 남겨두지 않겠냐"고 추측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MBC에서 진행된 '대통령과의 대화'를 마치고 'MBC에 좋은 일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으며 이는 엄 사장의 잔여임기 보장을 뜻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항간에선 내년 2월 주주총회 때 엄 사장이 사장에서 물러나 '더 좋은 곳'으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엄 사장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얘기를 해와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2008년 3월 취임한 엄 사장의 당초 임기는 2011년 2월까지다.
한편 MBC노조는 "김우룡 이사장이 엄기영 사장에게 백기투항을 얻어낸 것으로 본다"며 "정권이 YTN, KBS에 이어 MBC마저 장악해 언론장악을 완성하려는 것이다. (노조는) 방문진의 MBC 장악 음모에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