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불을 머리에 이고 산다. 전세계 화산 900개 중 108개가 일본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언제 화산이 터지고 지진과 쓰나미가 닥칠지 모른다는 공포는 일본인들의 유전인자 속에 스며 있다. 수많은 예언과 지질학계의 전망이 난무하는 것도 공포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일찍이 탄허스님이 예언했던 '열도 침몰'은 2006년 영화로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쳤다.
△지진의 공포 중에서도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는 후지산 폭발이다. 세계에서 인구밀집도가 가장 높은 도쿄에서 100㎞에 위치한 후지산이 터지면 사상 최악의 참사로 연결될 수 있기에 그렇다. 생성된 지 5만~10만년인 젊은 활화산인 후지산이 마지막으로 용암을 토해낸 시기는 1707년. 평균 300년에 한 번 꼴로 폭발했다는 후지산에서 최근 폭발 기운이 감지돼 야단법석이다. 만약 후지산이 터진다면 한국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화산재가 바람에 실려 태평양으로 건너가기에 직접적인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경제적인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후지산이 터졌던 1707년은 세계적으로 재해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유럽에서는 냉해가 겹쳐 프랑스에서만 60만명이 굶어 죽었다. 거대한 생명체인 지구 지표면의 심각한 변화는 해당 지역은 물론 지구촌 전체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얘기다. 후지산 폭발 가능성 보도를 접한 일부 네티즌의 반응은 이런 점에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아무리 일본에 좋지 않은 감정이 있더라도 빨리 크게 터지라는 저주를 외국인이 볼까 두렵다. 백두산도 후지산처럼 휴식을 멈추고 터질 수 있다.
△재앙 자체보다 놀라운 것은 재난을 당한 일본인들의 태도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은 위기 속에서도 질서와 품위를 잃지 않아 세계의 존경을 받았다. 단 두 사람이 상점을 약탈했는데 둘 다 외국인이었다. 1991년 6월 나가사키현 운젠 화산이 용암을 토해냈을 때는 언론인들이 가장 많이 죽었다. 보다 생생한 기사 한 줄, 생생한 사진을 위해 펄펄 끓는 용암에 접근하다 기자 16명이 변을 당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권홍우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