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넘치면서 주가가 상승하던 상반기에는 기관투자자와 함께 일부 운좋은 투자자들도 짭짤한 재미를 봤다. 순전히 돈의 힘에 의해 주가가 올라가는 유동성장세에서는 기업의 실적이 좋건 나쁘건 분위기에 편승해 상승세를 탈 수 있었다.그러나 하반기들어 금융시장이 위축되고 이에따라 주식시장이 조정을 받자 돈을 벌었다는 일반 투자자들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주식이 싸다고, 남들이 많이 사니까 매입하는 투자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저히 기업실적에 따라 주가가 차별화하는 실적장세에 맞춰 투자전략을 바꿔야 할때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외국인들이 대우사태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을 오히려 실적주를 저가에 매수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고 말한다.
바로 이같은 실적장세의 한가운데 엔고수혜 수출관련주라는 커다란 테마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반도체 철강 조선 등 주력부문이 일본과 경합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선 엔고가 대형호재가 아닐 수 없다. 수출가격이 그만큼 싸져 일본제품보다 가격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엔고는 일본경제의 회복을 의미하고 이는 대(對)아시아 수입확대로 나타나 한국기업의 수출증대로 이어진다.
물론 애초부터 수익성과 성장성이 없는 수출기업들이 엔고라고 해서 모두 혜택을 보지않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제품경쟁력과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엔고라는 날개를 달면 주가상승을 담보한 것과 마찬가지다.
최근 초대형 호재로 각광받고 있는 엔고의 경제적 배경과 엔고수혜주를 중심으로 한 전문가들의 투자유망종목, 실적주 고르는 법 등을 알아본다.
◇엔고는 거스를수 없는 대세=지난 98년 7월 144엔대까지 치솟았던 엔달러 환율이 최근 103엔대까지 내려앉으며 30% 가까이 절상됐다. 이같은 엔고현상은 증권주-건설주-무역주 등으로 순환매가 돌듯 유행에 따라 움직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데 주목해야 한다.
엔고의 배경에는 일본경제의 회복과 미국경제의 쇠퇴라는 세계경제의 커다란 흐름이 자리잡고있다.
일본은 지난 80년대말 금융시스템의 버블붕괴로 시작된 장기불황에서 벗어나고 있고 미국은 반대로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올해 3,000억달러가 넘는 사상 최고의 경상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전후 최대, 최장의 호황기를 마감하려하고 있다.
이에따라 국제 자본이 회복되는 일본경제에 힘입어 엔화를 매집하기 위해 일본으로 물밀듯 들어오고 있다. 엔고가 커다란 경제흐름으로 자리잡을 것임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80년부터 엔고와 우리나라 주가지수는 높은 상관관계를 유지해왔다. 예외없이 엔고시대는 주가가 상승했고 엔저시대는 주가가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최근 동원증권이 지난 86년부터 99년까지 포항제철 삼성전자 삼성전기 현대자동차 현대전자 등 일본과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있는 엔고수혜종목 31개사지수와 종합주가지수(코스피) 추이를 분석한 결과, 엔고시대엔 이들 종목들이 코스피 상승률을 웃돌며 코스피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 5인이 추천한 엔고수혜 투자유망 종목=전문가 5인으로부터 하반기 엔고수혜주 관련 투자 유망실적주 5개 종목씩을 추천받았다. 투자유망업종은 일본과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는 전기·전자, 철강, 조선, 자동차가 주류였다.
가장 많이 추천을 받은 종목은 현대자동차로 5명중 4명이 투자를 권했다. 이 회사는 자동차업계 사상 최대 호황에다 기아차 인수에 따른 시너지효과 발생으로 성장성이 부각됐다. 매출은 지난해 8조6,980억원에서 올해 52% 상승한 13조2,500억원, 경상익은 432억원 적자에서 4,250억원 흑자로 전환될 전망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구재상 이사는 업황이 급속도로 개선되고 있고 자동차업계 구조조정으로 국내시장에서 독점적 위치가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빛은행의 강인호(姜仁鎬) 펀드매니저와 유리자산운용의 이재학(李在鶴)사장은 엔고에 따른 가격경쟁력 회복으로 내수·수출물량이 증대되고 수익성 회복이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신흥증권 리서치센터의 정병선(鄭秉善) 이사는 엔고로 북미와 서유럽에서 일본차보다 가격경쟁력 우위 확보가 가능해졌으며 레저차량(RV) 시장 신규진출 등으로 매출이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3명이 복수추천한 종목은 포항제철 삼성전기 현대중공업 등이 있었다.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의 정태욱(鄭太旭)이사와 具이사는 이 회사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종합철강업체로 세계경기회복으로 철강수요가 급증하면서 하반기 국제 철강가격 상승의 수혜를 톡톡히 볼 것으로 내다봤다.
李사장은 포철은 달러당 140엔대에서도 경쟁국에 비해 가격경쟁력을 보유한 업체로 재벌기업과 달리 계열사 지원에 대한 우려가 없기 때문에 매출증가가 곧바로 순익으로 연결된다고 진단했다.
이 회사 올해 예상 순익(16% 증가한 1조3,040억원)을 감안한 주당순익배율(PER)은 12.7배로 미국 경쟁업체인 US스틸보다 2배 이상 저평가된 것으로 분석됐다.
李사장은 삼성전기는 국내 최대종합전자부품업체로 우수한 제품구성과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큰 폭의 엔고수혜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삼성자동차관련 부실처리로 올해 적자로 전환될 예정이지만 具이사와 姜매니저는 디지털기기 및 인터넷관련 전자기기에 주력할 계획으로 수익성과 성장성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110엔대 이하에서 일본조선업체에 대해 가격졍쟁력 우위를 확보하며 구조조정 진행으로 실적이 대폭 개선될 것으로 전망됐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정보통신 등 모든 사업부문의 지속적인 활황이 예상되고 계열사의 무분별한 지원이 차단됐다는 이유로 姜매니저와 李사장이 추천했다. 반면 鄭이사는 D램가격의 이상급등으로 삼성전자 주가가 단기간에 많이 올랐다며 내년부터 다시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밖에 호텔신라가 엔고로 인한 면세점 수입증가로 추천되는 것을 비롯, LG정보통신 삼성전관 현대전자 동원수산 고덴시 대동전자 대양금속 등이 단수추천됐다.
엔고와는 거리가 있지만 SK텔레콤이 내년부터 단말기보조금이 급감하면서 수익성이 대폭 호전될 것으로 전망됐고 현대증권은 대우사태로 과매도됐다는 것이 추천 이유였다.
◇실적주 고르는 법=엔고수혜주라고 모두 주가전망이 밝은 것은 아니다. 먼저 기업경쟁력을 보유한 실적주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해야 한다.
크레디 리요네증권의 백기언(白基彦) 상무는『상반기는 매출 감소에도 불구, 인원감축 등 원가절감과 금리하락에 따른 금융비용 감소로 경상익 베이스에서 기업실적이 호전됐다』며『하반기는 매출성장과 영업이익 창출능력이 실적주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같은 잣대에 부합하는 업종으로 반도체와 철강 등을 꼽았다.
대표적인 예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경기활황으로 이익이 급증했고 포철은 제품수요가 늘어난데다 하반기 판매가 인상 가능성이 높아 주가가 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결국 실적주 판단의 핵심은 기업이 실제 영업활동을 통해 앞으로 얼마나 영업익을 낼 수 있으며 해당산업이 사이클상 상승추세에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관기자COMEO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