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창] 부동산 신화에 맞서야 산다


물이 반쯤 담긴 잔을 놓고서 '반이나 남았다' '반밖에 안 남았다' 하는 정반대의 시각이 공존하듯 세상 모든 일에는 서로 모순되는 해석과 전망이 가능하다.

우리 가계의 자산이 부동산에 편중돼 있어 노후 준비 자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든가, 베이비부머의 태반이 하우스푸어라는 우려 역시 마찬가지다. 뒤집어보면 주택 한 채라도 가지고 있다는 게 다행이고 홈리스푸어보다는 사정이 양호하다는 게 위안이 될 수도 있다. 분명 현재의 중ㆍ장년층은 지금껏 열심히 노후 준비를 해왔고 너무 부동산에 집중해서 저축을 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만기된 적금과 곗돈으로 첫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서 집 크기를 넓히고 여기에다 대출까지 얹어서 자식들을 위해 학군이 좋은 곳으로 이사했다. 결과적으로 저축은 집을 사기 위한 목돈 만들기 수단이었을 뿐. 즉 매년 적립식으로 집에 한두 평씩 투자한 셈이다.

그래서 달랑 남은 것이 과분한 집 한 채. 결과적으로 수익률도 괜찮았고 잘못 사서 깡통 찰 리도 없는 부동산에 올인했던 것이고 그 대신 금융자산ㆍ퇴직연금은 온전히 남은 게 별반 없다. 그렇다고 손에 쥔 현금 좀 없다고 마치 노후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것처럼 폄하하는 데는 다소 억울한 면이 있다.

이러한 우리 현실에서 부동산을 빼놓고 은퇴자산 관리를 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전 재산의 80%에 해당하는 부분은 도외시한 채 몇 푼 되지도 않는 금융자산만으로 노후 설계를 하는 것은 마치 차포 떼고 졸만 가지고 장기를 두라는 것과 같다.

아무리 기를 써봤자 해법이 나올 리 없다. 그러니 이 즈음에서 우리는 다소 당혹스럽고 두렵더라도 '부동산의 유동화'라는 숙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그것이 개인 스스로의 선택이었든 아니면 사회경제적 필연이었든 간에 우리 일반적인 가계의 포트폴리오는 부동산, 그것도 주택에 집중돼온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오로지 재무적 관점에서만 보면 그에 대한 해답은 아주 간단하다. 부동산을 줄이고 금융자산을 늘리는 것이다. 주택연금, 평수 다운사이징, 싼 곳으로 거주지 이전 등 방법은 다양하다.

이같이 명쾌하고 간단한 일이지만 몸이 못 따라가는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익숙해진 부동산 신화에 감히 저항하는 듯한 두려움이 앞을 막아서고 집 잘못 건드려 괜히 자식들 혼사길이라도 막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뒤를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망설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은퇴자산 설계는 결국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