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골프매거진] 국내 10개 골프장 클럽챔피언전 24회 우승. 여기에 해외에서 거둔 3승을 합하면 모두 27차례나 클럽챔피언에 오른 전설적인 아마추어 최고수. 베스트스코어 63타. 홀인원 4회. 아마추어 골퍼로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 족적을 남겨온 이종민(아스토리아호텔 사장) 한국 10대 코스 선정위원은 최근 자신의 골프인생을 돌아본 '난 아직도 플레이 중이다' 란 제목의 서적을 출간하기도 했다. 대한골프협회 국제분과위원이자 본지 '한국 10대 코스' 선정위원으로도 활동 중인 그를 만나 클럽챔피언으로서의 삶, 그리고 10대 코스 선정 등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삶의 흔적찾기' 와 '한국골프의 단편들에 대한 기록' 이 책을 발간하게 된 이유라고 밝혔다. 책을 펴내고 난 감회는 어떤가. -주위 분들이 많은 힘을 주어 용기를 내서 쓰게 됐다. 막상 책이 나오고 나니 허전하기도 하고 아쉬운 점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골프의 발전을 위해 더 많은 점들을 알려주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능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다 표현하지 못한 부분도 사실없지 않다. 골퍼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골프를 제대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7차례나 클럽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며 전대미문의 승수를 올렸는데, 비결이 뭔가.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이니 가능했지 지금이라면 아마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는 실력도 많이 줄었다. 오히려 예전엔 부담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타이틀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들과 라운드할 때는 많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골프와 관련된 활동범위도 좁아졌다. 시간도 체력도 실력도 쉽지 않다. 연습량도 남달랐을 것 같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로도 활약했었는데, 이것이 골프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나. -예전에는 지금처럼 연습장이 흔하지 않았을 뿐더러 주로 골프장 안에 있었다. 연습시간도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구를 이기겠다기보다는 그냥 골프를 잘하고자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며 마음을 잘 가다듬어야 하는 운동이다. 이런 이유에서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아이스하키가 많은 도움이 됐다.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다. 종목은 다를지라도 체력과 멘탈 등에 많은 도움이 된다. 코스 이야기를 좀 해보자. 지금까지 플레이해 본 곳 가운데 특별한 느낌이 들었던 코스는 어디인가. -자주 이용하는 코스가 편하고 플레이하는 데도 유리하다. 내게는 남성적인 코스, 도전욕을 불러일으키는 코스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가령 아널드 파머가 설계한 코스는 흔히 여성적이라 말한다. 조경이나 코스 레이아웃이 부드러운 편이다. 반면 잭 니클로스가 디자인한 코스는 남성적이라 볼 수 있다. 굴곡이 심하고 도전적이다. 하지만 이는 느낌상의 차이일 뿐, 특별한 우열은 없다고 본다. 내 경우 해외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 라퀸타의 PGA 웨스트 코스에서 큰 위압감을 느꼈다. 국내에서는 우정힐스 코스가 인상적이었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아, 정말 잘 쳐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곳이 우수한 코스가 아닐까 싶다. 책에서 미국 플로리다의 베이힐골프장을 극찬했는데. -베이힐은 큰 호수를 둘러싸고 코스가 펼쳐져 있다. 곳곳에 함정도 많고 착시현상도 심하다. 코스관리도 매우 우수하다. 코스 레이아웃이 우리나라 산악코스와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이곳을 방문한 지도 20여년이 지났다. 지금은 다른 우수한 코스들이 많이 생겼을 것이다. 요즘은 코스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추세다. 웬만한 18홀 코스가 7,500야드에 달할 정도로 매우 길어졌다. 골프구력이 44년에 달한다. 과거와 현재 코스의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 전통적인 코스가 신설코스에 비해 뒤지는 점은 어떤 부분이라고 생각하나. -앞서 말한 것처럼 과거에 비해 지금은 코스가 상당히 길어졌다. 골프채가 발전하면서 코스세팅도 많이 어려워졌다. 예전에는 250야드를 날리면 장타자라 여겼지만 지금은 300야드는 돼야 장타자라 인정받는다. 조성된 지 오래된 전통있는 국내 코스 대부분이 산악지형에 자리잡고 있어 이런저런 한계를 지닌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적지 않은 변모를 보이고 있다. 뉴코리아, 리베라, 남서울 등 전통의 명문 코스들이 큰 변신을 꾀하고 있다. 코스를 리모델링하고 벙커와 해저드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등 종전과 다른 모습을 갖추기에 분주하다. 코스도 경쟁시대에 접어든 만큼 발빠르게 대처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제주도 골프장들이 10대 코스나 뉴 코스 선정 등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훌륭한 코스와 그렇지 못한 코스의 차이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제주도는 우선 지형적으로 이점을 가진다. 여기에 나인브릿지나 블랙스톤처럼 세계적인 코스 설계경험이 많은 우수한 외국 설계사가 코스를 디자인한 경우가 많다. 우수한 코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함정이 존재한다. 같은 지형이라도 설계가의 수준과 마인드에 따라 디자인이 180도 달라질 수 있다. 그만큼 처음 설계가 중요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부지에 제약이 많아 지그재그로 코스를 설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넓은 부지에 여유있게 코스를 조성하는 외국과 상반된다. 이 경우 플레이가 산만해질 수밖에 없다. 훌륭한 코스는 홀이 독립적이면서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위험성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내 여건상 쉽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본지가 2년마다 실시하는 '한국 10대 코스' 선정이 오는 9월로 다가왔다. 선정위원으로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평가할 것인가. 선정대상 골프장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비결을 조언한다면. -우선 플레이의 공정성에 치중해 평가할 생각이다. 플레이어가 노력한 만큼 대가가 주어져야 하고, 골퍼들 간 실력 차도 정확히 반영해야 훌륭한 코스이기 때문이다. 또한 14개의 클럽을 고루 사용하도록 배려한 코스설계도 중요하다. 해저드와 벙커 등이 유효 적절하게 배치돼 있는가도 빼놓을 수 없다. 결국 골퍼들에 대한 배려야말로 우수한 평가를 받는 가장 큰 비결이 아닐까? 가령 단순히 관리상의 이유로 티잉그라운드에 고무매트를 놓는다든가, 특정 장소에서만 티샷을 해야 한다면 이는 골퍼를 배려하는 것이 아니다. 골퍼들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오로지 부킹이 얼마나 잘 되느냐에 따라 명문과 비명문으로 갈렸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이용자 위주로 코스를 만들고 관리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10대 코스 선정은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보는가. -코스선정과 발표는 골퍼들에게 훌륭한 코스에 대한 기준과 정보를 제공하는 가이드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다. 골프장들도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선정된 골프장은 그만큼 자부심을 갖게 되며 위상도 더불어 높아진다. 좋은 평가를 위한 노력 자체가 골프장의 발전을 이끄는 동기부여인 셈이다. 선정위원으로서 모든 신설 코스들을 다 둘러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지만 가급적 평가에서 누락되는 일이 없도록 틈나는 대로 더 많은 코스를 둘러보겠다. 마지막으로 후배 골퍼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열심히 연습하는 만큼 룰이나 에티켓에도 신경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개 연습장을 찾아 처음 골프를 배우게 된다. 그래서 연습장의 티칭프로들이 기술만 가르칠 게 아니라 룰과 에티켓도 함께 알려줬으면 좋겠다. 따로 심판이 없는 골프에서는 각자가 심판인 셈이다. 처음부터 이를 잘 익혀둬야 평생 골프를 즐기는 데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