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공민왕 비사-파몽기'

이루어지지 않은 제왕의 꿈안방 극장은 때아닌 사극 붐이다. 고려초를 배경으로 한 '태조왕건', 중종~명종대의 '여인천하'를 비롯, '홍국영''천둥소리'에 이르기까지 시대배경과 가짓수가 퍽 다양하다. 이러한 정통 사극을 연극 무대에서 맛본다면 어떤 빛깔이 될까. 그것도 오랫동안 사극을 만들어 온 정통 연출가와 작가의 힘을 빌린다면. 국립극장이 오는 23일부터 내달1일까지 무대에 올리는 '공민왕 비사-파몽기(破夢記)'는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 중 하나로 알려진 공민왕과 신돈에 얽힌 비사를 다룬 정통 사극이다. 연출가와 PD로 잘 알려진 예술원 회원 표재순(67)이 연출을 맡았고 최근 100번째 저서 '조선의 당쟁'을 출간한 바 있는 작가 신봉승(70)이 극본을 썼다. 두 사람은 그간 사극 '조선왕조 500년'을 통해 수없이 호흡을 맞춰 온 사이. 공민왕비사-파몽기는 신봉승이 쓴 첫 번째 희곡이기도 하다. "공주, 나요, 나외다. 공주는 잠든 듯 아름다운 모습인데 나는 왜 이다지 눈물이 쏟아진다는 말이요." 무대 가득 공민왕의 목소리가 퍼진다. 원ㆍ명 교체기에 등장, 개혁정치를 펴 온 그는 몽고에서의 볼모생활 중 결혼한 노국공주가 사망하자 식음을 전폐하고 불사에만 전념케 된다. 이후 정사는 훈구파 제거에 골몰한 신돈의 몫. 결국 공민왕은 공주와 비슷한 반야에게 빠졌다가 미소년들에게 자신의 시중을 맡기기에 이른다. 모두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의 한 대목이다. 부제가 '파몽기'인 것은 이 작품이 깨어진 꿈들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 노국공주가 살아 돌아오리라는 공민왕의 꿈, 개혁정치를 바란 공민왕과 신돈의 꿈, 영원한 권력을 믿은 신돈의 꿈, 미천한 신분에서 왕과의 사랑을 희망한 반야의 꿈, 왕통이 이뤄지기를 기도한 대비의 꿈. 어느 것 하나 이뤄지지 않은 미완의 꿈이다. 공민왕 역의 이상직은 지난해 '브리타니쿠스'의 네로 역으로 히서연극상의 '주목받는 연기자상'을 수상한 배우. 이외에도 '우루왕'에서 솔지장군역을 소화했던 최원석이 신돈으로 분하고 '맹진사댁 경사'에서 이쁜이 역으로 출연했던 곽명화가 반야 역을 맡는다. 또 장민호, 김재건, 오영수 등 국립극단 배우 60여명이 함께 무대에 선다. 사람 키 한배 반 가량의 불상으로 꾸며진 법당 장면도 흥미거리. 불상을 모신 무대가 등장하는 건 연극사상 최초라는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TV드라마같은 구어체의 감칠 맛 나는 대사가 한 귀에 쏙 들어온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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