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에 나가보자

가시납지리, 대농갱이, 줄납자루, 강주걱양태, 끄리, 두우쟁이, 긴몰개, 강준치…. 우리에게 듣기도 생경한 물고기들이 이제는 셀 수도 없이 많은 곳, 그 곳이 바로 지금 서울의 `한강`이다. 어디 그 뿐인가. 원앙이나 황조롱이, 물총새는 이제 옛 친구이고 흰죽지, 삑삑도요, 깝작도요, 찌르레기, 넓적부리까지도 물을 차고 오를 때면 한강은 이미 자연의 `하모니`로 가득하다. 한강! 장장 오백여 킬로미터를 뻗어 내리고 유역 면적만도 서울의 40배가 넘는 광대한 면적에다 백두대간의 허리를 붙잡고 국토의 중원(中原)을 휘감아 서해와 맞닿을 때 쯤이면 이미 한강의 자취는 강원, 충북, 경기를 돌아 서울을 지났다. 그래서 삼국시대 한강은 `대수`(帶水)라 불렀고 고구려 때는 `아리수(阿利水)` , 백제는 `욱리하(郁利河)`라 했는데 이 후 중국문화를 수입하면서 중국식 명칭인 한수(漢水)라 불리게 된다. 한강은 한반도 반만년 역사의 기록장이다. 옛날부터 한강은 쟁패의 요충지였다. 한강 유역의 득실이 곧 나라의 흥망성쇠와 밀접한 관계를 가져 한강을 지배하면 나라는 번영하고 상실하면 쇠퇴했다. 그런 만큼 한강은 고래로부터 곡창과 어업, 운송에서부터 국가 재정의 보급로에까지 역할을 담당했으니 당대의 왕과 세도가들이 앞다투어 한강변에 정자나 별장을 짓고 연회를 즐기며 달구경하고 유유자적하던 풍류가 한강에서 한데 어우러진 모습은 아마 실로 장관이었으리라. 80년대 초 개발되지 전 한강도 한 때 인고의 세월동안 지친 몸에 기력을 다 한 것처럼 여기 저기 모래 웅덩이가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것이 남사스러워 이십여년 전 개발의 굉음을 울렸는데 누가 알았으랴. 하루 아침에 황쏘가리와 버들매치, 참붕어와 참게의 보금자리를 빼앗아 버리게 된 것을…. 허연 살은 넘실대는 비단물결로 감싸이고 거칠었던 가장자리 풀숲은 매끈한 모습으로 단장을 했건만 한 번 떠나버린 `이 눔(?)`들은 영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 서울시민과 서울시가 한강물 맑히기에 끈질긴 노력을 하고 강변 습지와 하천 모습도 그 때로 되살리며 이들이 다니는 수로를 새로 단장하는가 하면 몰래하는 낚시꾼들을 눈 부라리며 감시하기 어언 십 수년. 밤섬에는 어느새 강준치와 쏘가리가 미안한 듯 살며시 주위 동태를 살피고 잠실에는 몰개, 모래무지, 두우쟁이가 헤엄쳐 노니는가 하면 물가에선 노랑턱멧세가 이들을 노려보고 하늘에는 오색딱다구리가 곤두박질한다. 도도히 흐르는 한강은 또 어느 사이 새와 물고기, 식물과 곤충에게 그들만의 자리를 살짝 비켜주고 있다. 그들이 다시 살아있는 공동체에 우리도 몸을 적시기 위해 이제 한 번 한강변에 나가보자. 그리하여 그들이 다시 돌아 온 한강을 맛보자. <최재범(서울시 행정2부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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